미국 생산 늘리고 역수입까지…트럼프에 두손 든 한·일 자동차 업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정책이 본격화하면서 한·일 자동차업계의 생산 구조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관세 부담을 피하기 위해 토요타, 혼다 등 일본 자동차 업체는 내년부터 미국에서 생산한 차량을 본국으로 역수입하기로 했고, 현대차그룹은 미국 내 생산 비중을 대폭 늘릴 계획이다.

최근 토요타는 내년부터 미국에서 생산한 중형세단 캠리, 픽업트럭 툰드라, 스포츠유틸리티차(SUV) 하이랜더 등 3종을 역수입하기로 했다. 미국 시장에서 오랜 기간 중형세단 판매 1위를 지켜온 스테디셀러 캠리는 정작 일본 내수 시장에서는 2023년 이후 판매가 중단됐다. 소형차와 SUV 위주인 일본 시장에서 판매가 저조했기 때문이다.

토요타가 캠리 판매를 중단한지 2년 만에 역수입으로 판매를 재개한 것은 미국과의 무역 관계 개선을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여러 차례 일본의 대미 무역 흑자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왔다. 도요다 아키오 토요타 회장은 지난달 미국에 100억 달러 투자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자동차 행사에 빨간색 ‘MAGA’ 모자를 쓰고 나타나는 등 미국에 대한 구애를 이어가고 있다.

혼다, 닛산도 미국산 차량 역수입을 검토 중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등에 따르면 혼다의 픽업트럭 릿지라인, SUV 패스포트, 프리미엄 브랜드 아큐라의 전기차 일부 모델 등이 역수입 대상으로 거론된다. 닛산에서는 중형세단 알티마, SUV 무라노, 패스파인더 등이 후보다.

한국은 미국의 높은 인건비와 역수입 비용, 환율 효과를 고려할 때 역수입으로 수익성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대신 미국 현지 생산량을 대폭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현대차그룹은 관세 회피를 위해 미국 판매 차량의 현지 생산 비율을 현재 43% 수준에서 2030년까지 80%로 높일 계획이다. 지난해 83만4000대 수준인 북미 판매량도 2030년엔 144만대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은 최근 미국 오토모티브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현지 생산만 80%로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현지 공급업체 활용률도 60%에서 80%로 높인다”며 중형 픽업트럭과 SUV, 상업용 차량(전기 밴, 중형 트럭 등)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마가’ 정책을 계기로 자동차 업계의 생산 방식이 바뀌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과 교수는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의 판매량에 따라 잉여 물량을 본국으로 역수입하는 구조가 계속 나타날 수 있다”며 “자동차 생산이 본국 중심이 아니라 가장 큰 시장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흐름이고, 앞으로 더 강화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관건은 수익성이다. 미국의 인건비 상승 수준이 가장 큰 변수가 될 전망이다. 미국 자동차노조(UAW)가 빅3 자동차 업체(포드, GM, 스텔란티스)와 맺은 협약에 따르면 근로자 기본급은 시간당 36달러부터 시작하며, 숙련직의 경우 43달러 이상이다. 이들 업체는 지난 2023년부터 5년에 걸쳐 25% 인상된 임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이 교수는 “미국은 인건비가 비싸지만 파업 등의 불확실성이 있는 국내에 비해 노동 환경이 안정돼있다”며 “정권이 바뀌더라도 자동차 업체에 현지화를 압박하는 흐름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남윤서·고석현 기자 nam.yoonseo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