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16강 경기가 열리는 지난 6일, 미국과 벨기에 경기에 앞서 미국 대표 폴라린 발로군의 이야기가 사람들을 어이없게 만들었다. 그는 32강 경기에서 레드카드를 받아 16강 경기에 나올 수 없었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축구연맹(FIFA) 잔니 인판티노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재심을 요구했다. 결국 FIFA는 이례적으로 발로군의 출전을 허용했고 그는 벨기에전에 선발로 나왔다. 트럼프는 “FIFA가 옳은 일을 했다. 큰 부당함을 바로잡아줘서 고맙다”고 했다.
도대체 무엇이 부당했고, 왜 바로잡아야 하는지 그리고 월드컵 경기 운영에 왜 미국 대통령이 관여하는지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한국의 한 축구 해설가는 1934년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 아래 이탈리아 월드컵과 1976년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의 군부 독재 당시 아르헨티나 월드컵을 떠올리게 한다고 했다. 이 두 월드컵은 세계 축구의 흑역사로 남아있다. 독재 정권들이 자신들의 홍보를 위해 월드컵을 철저히 이용했고, 온갖 편파 판정에 휩싸이며 개최국들이 우승을 했다. 트럼프도 이번 대회 직전 급조된 FIFA 평화상을 받으면서 ‘이상한 월드컵’의 징조를 보이더니 급기야 미국에게 유리한 편파 판정까지 이끌어 냈다. 발로군의 출전은 미국이 1-4로 크게 지는 바람에 묻혀지게 됐지만 만약 이겼다면 사태는 크게 심각해졌을 것이다.
또 한가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야기가 있다. 발로군이 트럼프가 그토록 싫어하는 외국인 가정의 출생시민권자인 까닭이다. 그의 부모는 나이지리아 출신으로 영국에 살다가 잠시 미국을 방문했던 기간 중 뉴욕시 브루클린에서 발로군을 낳았다. 영국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임신 중이던 발로군의 어머니가 건강 상의 이유로 항공기 탑승을 거부당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미국에서 태어났다. 발로군은 이후 영국으로 돌아가 생활하며 축구를 했지만 수정헌법 14조에 명시된 출생시민권 제도에 따라 미국 시민권이 있었고 이번 월드컵에 미국 대표로 뛸 수 있게 된 것이다.
출생시민권은 트럼프가 행정명령을 통해 없애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바로 지난달 연방대법원 판결로 아직 유지되고 있다. 이 판결에 대해 백악관은 “노예의 자녀들을 위한 것이었을 뿐”이라며 앞으로도 폐지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출생시민권자가 미국 국가대표로 뛰고 있는 것은 문제가 아닌 모양이다. 이에 반해 이민자 권익 단체들은 발로군과 같은 경우가 바로 출생시민권 제도가 미국에 기여하는 증거라며 이를 지키기 위해 계속 싸울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이번 월드컵은 스포츠를 넘어서 지구촌에 많은 깨달음을 주고 있다. 깨끗하고 공정해야 할 스포츠가 어떻게 더럽혀지는지, 이민자에 대한 차별과 탄압이 얼마나 어이없는 짓인지 잘 보여준다. 백악관은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실행한 60가지 반이민자 정책을 자랑하며 발표했다. 75개국에 비자 발급을 제한하고, 시민권 박탈을 강화하고,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이민자 구금시설을 만들고, 외국인 취업을 힘들게 하고, 소기업 융자 금지 등 영주권자에게 불이익을 주고, 유학생 비자를 무더기로 취소하는 등 백악관이 자랑한 이 정책들은 모두 인종차별과 혐오에 뿌리가 있다. 그리고 월드컵 역사도 더럽히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