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되면 우리는 다시 광주를 떠올린다. 올해도 미주 곳곳에서 5·18 기념식을 열었다. 기념식은 단지 과거를 추모하는 자리가 아니다. 광주의 정신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정신을 이어가는 일이 여전히 우리 몫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자리다. 총칼 앞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민주주의를 지키려 했던 시민들의 얼굴, 그리고 그날의 상처와 연대를 기억한다. 하지만 5·18 정신은 광주에만 머물지 않았다. 국경을 넘어 미국 땅에도 뿌리내렸고, 지금도 미주 한인사회의 곳곳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해마다 5월이 되면 더욱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바로 고 윤한봉 선생이다. 5·18 항쟁의 지도자였고, 이후 미국 망명 생활 속에서 미주 한인운동의 토대를 세운 인물이다.
윤한봉 선생의 삶은 그 자체로 미주 한인사회 운동사의 한 장면이다. 그는 1980년 5월 광주의 한복판에 있었다. 군사독재에 맞서 싸우다 수배자가 되었고, 결국 1981년 화물선 창고에 몸을 숨긴 채 35일간의 밀항 끝에 미국에 도착했다. 그러나 망명은 도피가 아니었다. 그는 미국에서도 조국의 민주화와 평화통일을 위한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1984년 재미한국청년연합을 만들었고, 이어 한겨레운동미주연합을 조직했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조국을 위해 싸우는 것만큼, 이 땅에 사는 한인들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미국 곳곳에 커뮤니티 센터를 세우기 시작했다. 오늘날 뉴욕·뉴저지 민권센터, 버지니아 함께센터, 펜실베이니아 우리센터, 일리노이 하나센터, 미교협 텍사스, 그리고 캘리포니아의 민족학교와 아리센터까지 이어지는 미주 한인 커뮤니티 운동의 뿌리에는 윤한봉 선생의 철학이 자리하고 있다. 이 단체들은 1994년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미교협)라는 전국 조직으로 연결됐고, 이제는 미국 내 대표적인 한인·이민자 권익 네트워크로 성장했다. 그리고 2023년 설립된 미주한인평화재단이 코리아 평화 운동을 다시 이어가고 있다.
이들의 활동은 이민자 권익 보호, 정치 참여 확대, 청소년 교육, 사회복지는 물론이고, 서류미비 청년과 입양인 시민권 문제, 흑인 이민자 공동체와의 연대, 평화 운동까지 폭넓게 이어지고 있다. 최근 강화된 이민 단속 속에서는 24시간 핫라인을 운영하며 불안 속에 살아가는 이민자들을 돕고 있다.
미교협 가입 단체들은 ‘바르게 살자, 뿌리를 알자, 더불어 살자’는 구호를 내걸고 있다. 이 구호가 바로 5·18 정신이다. 그리고 이제는 이 5·18 정신이 국경과 세대를 넘어 한인 2세들이 활동을 이끄는 시대를 맞고 있다.
5·18의 진정한 힘은 바로 이런 데 있다. 총칼에 맞선 항쟁이 단지 과거의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경과 세대를 건너 사람들의 삶 속에서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광주에서 시작된 외침은 미국의 한인 커뮤니티 센터가 되었고, 이민자들의 권리를 지키는 운동이 되었으며,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 정신으로 살아남았다.
우리는 종종 역사가 거대한 정치 지도자나 권력에 의해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역사는 누군가가 뿌린 작은 씨앗에서 시작된다. 윤한봉 선생이 미국 땅에 뿌린 씨앗 역시 그랬다. 그 씨앗은 40여 년 동안 자라나 오늘도 수많은 활동가와 공동체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