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6일, 한국에서 온 원폭 피해자 1세 심진태(83)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과 2세 한정순(67) 한국원폭2세환우회 회장이 수백 여 평화 운동가들과 함께 유엔 앞에 섰다. 그리고 반핵 평화를 외쳤다. 30일 유엔에서 열린 한반도 동북아 평화실현 대회에서도 이들은 증언대 앞에 섰다. 그리고 80년간 역사가 외면해온 질문을 다시 던졌다. 1945년 원폭 투하는 과연 합법이었나? 심 지부장은 묻고 있다. “미국이 사과를 했습니까, 보상을 했습니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의 역사는 주로 일본인의 이야기로 기록돼 왔다. 그러나 당시 강제징용과 징병으로 끌려간 수많은 조선인도 그 불길 속에 있었다. 조선인 피폭자는 7만여 명에 달하며, 그 중 4만여 명이 폭발 직후 사망했다. 2만3000여 생존자들은 해방 후 귀국했지만, 일본 정부의 보상 대상에서도, 국제사회의 관심에서도 오랫동안 배제되어 왔다. 원폭 피해는 1세에서 끝나지 않았다. 방사선 피폭의 영향은 자녀 세대로 이어졌고, 피해자 후손들은 지금도 다양한 건강 문제와 차별, 그리고 침묵 속에 살아가고 있다.
이번 유엔 방문은 한국인 원폭 피해를 알리고 미국의 책임을 묻는 국제민중법정을 알리기 위해서다. 오는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민중법정은 세 가지를 요구한다. 첫째, 1945년 원폭 투하가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법적 판결. 둘째, 현재 핵무기의 사용과 위협도 국제법 위반이라는 판결. 셋째, 미국 정부의 한국인 피해자들에 대한 공식 사과. 역사적 책임 규명은 단순한 과거 청산이 아니다. 1945년의 원폭 투하를 국제법 위반으로 판결하는 것은, 오늘날 핵무기의 사용과 위협 역시 불법이라고 인정하는 법적 토대가 된다. 과거의 책임이 현재의 금지를 위한 기초가 된다.
미국에서도 미주한인평화재단(KAPF) 등이 이들을 돕고 있다. KAPF는 지난해 미주 한인단체로는 처음으로 국제핵무기폐기운동(ICAN)에 가입했다. ICAN은 유엔에서 세계핵무기사용금지조약(TPNW)을 이끌어낸 공로로 2017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단체다. KAPF는 1988년 한반도 핵무기 철거 서명 10만 개를 받아 미 의회에 제출하고, 1989년과 1990년 유엔 앞에서 2년 연속 단식농성을 벌이며 한반도 평화를 외쳤던 재미한국청년연합, 한겨레운동미주연합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원폭 피해자들의 소망은 소박하고도 절박하다. 2045년, 원폭 투하 100주년이 되기 전 핵무기 없는 지구를 만드는 것이다. 2024년 일본 원수폭 피해자 단체협의회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며 TPNW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높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이들의 소망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현재 세계에서 9개국이 약 1만 2000기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 50년 만에 처음으로 핵무기에 대한 실질적 구속력이 있는 통제 없이 핵경쟁이 재개되고 있다. 핵전쟁 위협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서는 핵무장 지지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핵무기를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 대신, 핵무기를 갖자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다.
1945년의 원폭 생존자들은 80년을 견뎌왔다. 그들이 그 고통을 버텨온 것은 침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말하기 위해서다. 마지막 핵무기가 사라지는 날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