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막대한 관세 수입이 미국의 재정 곳간을 채워주고 있다. 만성 적자에 허덕이던 미국 재정에 주목할 만한 수입원으로 부상하면서 관세 정책이 트럼프 행정부 이후에도 쉽게 철회되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상호관세라는 명목의 초고율 관세가 국제 교역의 뉴노멀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3일 미 인터넷 경제 매체 울프 스트리트에 따르면, 미국은 철강 25% 등 트럼프 행정부의 신규 관세가 부과되기 시작한 지난 3월 82억 달러의 관세 수입을 올린 것을 시작으로 ▶4월 156억 달러 ▶5월 222억 달러 ▶6월 266억 달러 ▶7월 280억 달러로 급증세다. 울프 스트리트는 이같은 추세가 계속될 경우 1년 동안 총 3080억 달러(약 426조 원)의 관세 수입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2024년 9월 종료된 회계연도에서 미 정부가 거둔 관세 수입이 770억 달러(약 106조 원)였으니, 4배로 껑충 뛰는 셈이다.
NYT “관세 지속시 10년간 2조달러 넘어”
뉴욕타임스(NYT) 역시 이날 “올해 들어 7월까지 일부 소비세를 포함한 미국의 관세 수입은 1520억 달러(약 210조 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 780억 달러(약 108조 원)의 거의 2배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관세 정책이 계속 유지될 경우 향후 10년간 총 2조 달러(약 2770조 원)가 넘는 수입이 추가로 발생할 수 있다고 예상한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역점 법안으로 지난 7월 의회를 통과한 초대형 감세 법안 ‘OBBBA’(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로 인한 재정적자를 메우는 데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미 의회예산국(CBO)에 따르면, 대규모 감세와 정부 지출 삭감을 골자로 하는 OBBBA로 향후 10년간 미 정부는 4500조 달러의 세수가 감소하고 정부 지출 1100조가 줄어들어 결과적으로 총 3400조의 재정적자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이 기간 관세 수입으로 최소 2조 달러를 확보할 경우 재정적자의 약 60%를 메울 수 있게 된다.
트럼프 “관세 일부 분배 및 부채 감축에”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도 “관세로 (매월) 수백억 달러가 들어오고 있다”며 관세 예찬론을 폈다. 휴일인 이날 백악관으로 복귀하는 길에 취재진과 만난 그는 관세 수입분 사용처와 관련된 질문에 “국민, 특히 중산층과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일부 분배하거나 배당금을 지급할 수 있지만 우리가 할 일 중 하나는 부채 감축”이라고 말했다. 미 재무부(Debt to the Penny)가 공개한 연방정부 부채 규모는 7월 31일 기준 36조9200억 달러(약 5경1115조 원)에 이른다.
미국이 10년간 최소 2조 달러의 수입원이 돼 줄 관세 정책을 되돌리긴 어려울 거란 관측이 나오는 건 이같은 천문학적 규모의 정부 부채에 짓눌려온 상황 때문이다.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와튼스쿨)의 경제학자 조아오 고메스는 “관세 수입은 중독성이 있다”며 “(미국의) 부채와 적자가 심한 상황에서 수입원을 거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결정일 것”이라고 NYT에 말했다.
“관세 수입, 중독성 있어 철회 어려워”
물론 관세 정책의 부작용도 우려된다.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면 소비자가격 인상을 낳고 이는 부유층보다 저소득층에 더 큰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많은 기업들이 불가피하게 가격 인상에 들어갈 경우 경제 성장에 부담이 되면서 정부가 거둬들이는 전통적인 소득세 수입을 감소시킬 수 있다.
그럼에도 공화당, 민주당 관계없이 미래의 정치 지도자들이 관세 철폐가 미국의 국가 채무에 더 큰 부담을 지울 것이라고 판단할 경우 정책 철회를 주저할 수 있다고 어니 테더스키 예일대 예산연구소 경제담당 국장은 지적했다. 테더스키 국장은 “의회는 정치적으로 위험한 투표를 하는 데 적극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NYT에 말했다.
워싱턴 DC 조야에서는 이미 관세 수입의 사용처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는 인사들도 있다. 관세로 벌어들인 수익을 1인당 600달러씩 환급금 형태로 사람들에게 나눠주자는 법안이 지난달 28일 조시 홀리 공화당 상원의원(미주리)에 의해 발의된 바 있다. 민주당은 정권을 되찾을 경우 관세 수입을 새로운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쓰자는 얘기가 나올 수 있다. 민주당 전략가 타이슨 브로디는 ”민주당이 이 사안을 바라보는 방식은 ‘관세 철회는 불가능하다’가 아니라 ‘이제 커다란 재원이 생겼으니 쓰고 재편성할 수 있게 됐다’라는 식”이라고 전했다.
‘물가 우려→관세 인하’ 가능성도 여전
다만 관세 정책의 장기적 지속 가능성에 대한 회의론도 있다. 관세가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없을 수 있고, 미래의 정부 인사들이 물가를 낮추기 위해 관세를 인하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진보 성향 단체 ‘그라운드워크컬래버러티브’의 알렉스 하케스 정책ㆍ변호책임자는 “관세는 명백히 세수 확보의 효율적인 방식이 아니다”며 “단순히 세수 확보를 위한 진보 진영의 장기적 우선 과제가 될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NYT에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강경 관세 정책의 부작용을 지적한 최근 예일대 예산연구실(TBL)의 분석 결과를 “당파적”이라고 비판하며 방어막을 폈다. 케빈 해셋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은 이날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소비자들은 예일대 TBL과 같은 당파적 분석을 무시한다”며 “모든 인플레이션 지표는 지난 5년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관세가 인플레이션을 촉발하고 경기 침체를 유발한다는 주장은 데이터에 없다”고 주장했다.
앞서 예일대 TBL은 오는 7일부터 부과되는 국가별 상호관세의 영향까지 반영해 미국의 물가 수준이 단기적으로 1.8% 오를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가구당 수입이 2400달러(약 330만 원) 감소하는 것과 같은 효과라는 분석을 내놨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