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도 모르는 압류 조치로 인해 사업체 은행 계좌에 있던 자금이 갑자기 사라졌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오렌지카운티에서 운송업체를 운영하는 이모씨는 지난 8월 은행 앱을 확인하다 깜짝 놀랐다. 30년 가까이 거래해 온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 계좌 잔고가 순식간에 ‘0’이 돼 있었기 때문이다. 불과 한 시간 전만 해도 13만 달러가 남아 있던 비즈니스 계좌의 돈이 모두 사라졌다.
이씨는 처음에는 신종 스캠이나 해킹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시간 뒤 은행과 통화한 결과, 뉴욕 연방법원이 이씨 회사 계좌의 압류 영장을 발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법원 영장에는 버지니아주에 본사를 둔 중국계 S업체가 약 46만 달러의 대금을 지급하지 않아 관련 기업과 개인 계좌를 추적해 잔고를 압류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조치는 뉴욕의 한 채권추심 전문 로펌이 대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이씨는 S사와 그 계열사, 관련 인물들과 전혀 관계가 없었다. A 변호사는 법원 명령을 근거로 S사와 아무 관련이 없는 이씨의 회사 계좌에서 13만 달러를 압류해 간 것이다.
이씨는 “이미 동부지역은 업무가 끝난 시간이라 대응도 어려웠다”며 “밤새 협력 업체들의 거래 내역을 모두 확인했지만, 관련 채무는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에 이씨는 은행에도 문의했지만, 뱅크오브아메리카 측은 “압류 조치를 요구한 변호사에게 직접 연락하라”는 답변만 내놨다고 한다. 결국 그는 새벽에 변호사인 지인을 통해 A 변호사에게 “S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이메일을 보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A 변호사는 “해당 케이스와 무관하다면 압류를 취소하겠지만, 이를 증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후 이씨 회사는 S사와 아무 관련이 없는 업체라는 사실이 인정되면서 잔고 압류는 해제됐다. 압류됐던 13만 달러도 이틀 만에 반환됐지만, 이미 여러 장의 체크가 잔고 부족으로 부도 처리됐고, 협력업체들에는 사정을 해명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이후 확인 결과, A 변호사가 제출한 서류에는 이씨 회사와 비슷한 이름조차 없었으며, A 변호사는 물론 영장을 발부한 법원조차 국세청(IRS) 고용주 식별번호(EIN)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를 대신해 항의 메일을 보낸 변호사는 “즉각 대응하지 않았다면 사태가 장기화돼 정상적인 사업 운영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은행계좌 압류는 기업에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후 뱅크오브아메리카도, A 변호사도 사과나 유감 표명을 하지 않았다.
법원 명령을 통한 계좌 압류 건수에 대한 공식 통계는 없지만, 전미추심변호사협회(NCBA)에는 가입 변호사만 1700여 명에 달한다. 이들은 오래된 추심 자료를 사고팔며 10년 이상 경과된 채무 건까지 활용해 무차별 압류 명령을 받아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일단 이름이나 회사가 비슷하면 영장을 먼저 받는다”는 말이 공공연하다.
전문가들은 근거 없는 압류로 피해를 보는 업체가 늘고 있다며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앨버트 장 변호사는 “채무 추적을 위한 법원 명령이 무고한 업체를 피해자로 만들고 있다”며 “비슷한 이름이나 인종적 특징만으로 무차별 압류를 하는 사례가 적지 않아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충분한 검증 없이 영장을 받아낸 추심 변호사, 이를 그대로 집행한 법원과 무관심으로 일관한 대형 은행 탓에 선량한 스몰비즈니스가 피해를 떠안은 셈이다.
이씨는 “이민 생활하면서 많은 일을 겪었지만, 이번만큼 억울한 일은 처음”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최인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