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무대에서 종목은 다르지만, 운명처럼 비교되는 두 이름이 있다. 미국 피겨스케이팅의 새 역사를 쓴 알리사 리우(미국)와 중국 프리스타일 스키의 ‘황제’ 에일린 구(중국명 구아이링)다. 두 선수는 미·중 지정학적 갈등이 투영된 라이벌로 부상하며, 스포츠가 국가 간 체제 경쟁의 도구가 될 때 개인이 짊어져야 할 무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리우는 중국인 아버지를 둔 오클랜드 출생이며, 구아이링은 중국인 어머니를 둔 샌프란시스코 출신이다. 둘 다 미국의 풍요로운 인프라 속에서 성장한 ‘미국산 천재’들이다. 하지만 시상대에서 리우는 성조기를 휘감으며 미국 여자 피겨의 24년 만의 금메달을 자축했고, 구아이링은 오성홍기를 몸에 감싼 채 중국의 올림픽 위상을 드높였다는 점이 결정적 차이다.
리우의 금메달은 단순한 우승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2022년 베이징 대회 이후 “행복하지 않다”며 번아웃을 호소하고 은퇴를 선언했던 그가 2년 만에 복귀해 이룬 인간 승리다. 미 NBC는 “자신을 내려놓은 뒤 오히려 가장 큰 무대에서 자유로워졌다”고 평가했다.
특히 리우의 아버지가 천안문 사태 이후 망명한 반체제 인사라는 점은 미국 보수 진영을 자극했다. “딸이 중국 정보기관의 표적이 됐다”는 과거 아버지의 발언이 재조명되면서, 리우는 ‘공산주의를 거부하고 자유를 택한 승리자’로 박제됐다.
반면 구아이링은 이번 대회 하프파이프 금메달로 프리스타일 사상 최다 메달(금 3·은 3)이라는 대기록을 썼지만, 미국 내 시선은 얼음장처럼 차갑다. 연간 2,300만 달러(약 333억 원)를 벌어들이는 ‘광고 퀸’의 행보를 두고 미국 보수 정계는 “미국 시스템의 혜택을 받고 적의 품에 안겼다”며 거세게 비난한다.
JD 밴스 부통령 역시 사실상 그를 겨냥해 “스스로 미국인이라 규정하는 사람만 응원할 것”이라며 국적 논란에 불을 지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그가 중국 대표로 뛰는 대가로 거액을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구아이링은 ‘자본에 영혼을 판 배신자’라는 프레임에 갇히게 됐다.
이러한 구도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더욱 극단적으로 흐르고 있다. ‘알리사 리우처럼 되라(Be like Alysa Liu)’는 문구는 리우를 ‘충성의 표본’으로 치켜세우는 동시에 구아이링을 ‘배신의 상징’으로 낙인찍는 도구가 됐다. 반대로 중국 네티즌들은 리우를 향해 “아버지를 이용한 정치적 도구”라며 외모 비하를 포함한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며 맞불을 놓고 있다.
한 미국 사회학 교수는 NBC 인터뷰에서 “누가 ‘착한 아시아인’이고 누가 ‘나쁜 아시아인’인가라는 해묵은 인종적·정치적 질문이 두 선수에게 쏟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거대한 국가주의 프레임 앞에서 개인의 정체성은 갈기갈기 찢기고 있다.
이해준 기자
![중국계 미국인 알리사 리우(왼쪽 사진)는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미국계 중국인 구아이링(오른쪽 사진)은 프리스타일 스키 여자 하프파이프에서 각각 금메달을 땄다. 국가주의라는 거대 프레임 안에 갇혀 비판에 시달린 두 선수는 미·중간 갈등의 희생양이다. [AP·신화=연합뉴스]](https://www.atlantajoongang.com/wp-content/uploads/2026/02/5e29a4a6-7ce4-476b-a623-dae7ab046761-750x52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