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부부와 우리 부부가 점심을 먹으며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다시 들으니, 재미있다. 귀담아들으니, 재미있고 연속극 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그분들은 74년에 미국 와서 열심히 살았다. 열심히 살다 보니, 플로리다 사는 도시에 상업용 빌딩을 소유하게 되었다. 휴일에 건물을 점검하려 부부가 빌딩안에 들어갔다. 문을 잠그지 않은 틈을 타 들어온 강도에게 돈과 패물을 빼앗기고 심하게 얻어맞아 혼절했다. 병원으로 실려 갔지만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그분들은 그날의 끔찍한 사건을 지금 돌아보며 그때 그 사고가 오늘의 감사와 행복을 일깨우는 계기로 변했다고 한다. 그 때 강도가 총을 쏘지 않아 죽지 않은 것, 칼로 큰 상처를 내 평생 불구로 만들지 않은 것, 얻어맞아 까무러치고 뼈도 부러져 병원 응급실에 갔지만,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두고두고 감사한다.
더욱 감사하는 것은, 그 강도 사건을 계기로 은퇴했다는 점이다. 미국에 이민 와서 40년 넘게 쉼 없이 하던 고생을 중단하고 그동안 벌어 놓은 돈으로 후반 인생을 즐기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건물을 판 돈은 노후를 보내기에 넉넉했다. 이제 그들은 친구들을 만나고, 시니어 모임에 나가 라인댄스를 배우고, 건강 체조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산다. 말 그대로 노래하고 춤추며 맛있는 음식 먹고 친구들과 행복하다.
자녀들은 모두 성공해서 잘 살고 있고, 부모와도 가깝다. 60년에 가까운 결혼 생활 동안 배우자도 큰 병 없이 함께 늙어 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가 넘친다. “인생에서 가장 여유롭고, 가장 행복한 시간”이 지금이라고 한다. 그때 강도를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까지도 돈 벌며 일을 했을 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분들 삶에 두번째 드라마는 세 딸과 막내아들이다. 1960년대, 권사님은 경북 문경초등학교에 매력 넘치는 처녀 여교사였다. 문경에 탄광과 광산이 번성하며 인구가 급격히 늘고, 박정희 대통령이 교편을 잡았던 학교 교정에는 새마을 깃발이 펄럭였다.
인기 만점의 예쁘고 똑똑한 처녀 교사였던 권사님은 결국 오빠의 친구였던 해군과 결혼했다. “아들을 빨리 낳아야 한다. 아직 소식이 없나? 여자는 몸을 잘 챙겨야 한데이.” 결혼 초부터 시어머니는 아들을 낳으라고 독촉했다.
첫번째 출산 소식을 듣고 달려온 시어머니는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아들이냐? 빨리 말해라. 아들이지?”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건강한 딸입니다.” 시어머니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축하 대신 깊고 무거운 한숨만이 흘러나왔다. 둘째도 연년생으로 태어났다. 출산 날, 시어머니는 새벽부터 대기실에 앉아 중얼거렸다. “이번엔 아들이어야 한다. 이번에는…”
그러나 또 딸이었다. 그 순간 시어머니의 얼굴은 돌처럼 굳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얼른 하나 더 가져야지. 이번엔 꼭 아들을 낳아야 한다.” 세 번째 임신이 되었고, 출산일에는 시어머니와 남편까지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문이 열리고 간호사가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예쁜 여자아이입니다.” 시어머니는 아무 말없이 돌아섰고, 남편도 침묵한 채 병원을 나가 버렸다. 버림받은 느낌이었다.
연년생으로 딸 셋을 낳은 권사님은 죄인 아닌 죄인으로, 시어머니에게서 버림받은 기분이었다. 남편이 미국 회사에 취직되었을 때 권사님은 얼씨구나 미국에 왔다. 미국에 와서 살면서 막네 아들을 낳았다. 시어머님께 연락을 했으나, 이미 노환이 나신 시어머니는 그렇게 열심히 바라던 손자를 안아 보지 못했다.
미국 생활에 바빠 부모가 아이들을 세심히 돌볼 여유가 없던 시절, 아이들은 서로 의지하며 공립학교에서 공부했고, 학업 성취와 리더십, 운동과 예능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첫째 딸이 스탠포드대 장학생으로 합격하고, 둘째와 셋째 딸들도, 그리고 막네 아들까지 다 명문대에 진학하자 이웃 학부모들은 “애들 교육을 성공적으로 시킨 비밀이 뭐 예요?” 물었다.
첫째 딸은 법대를 나와 변호사가 되고 가정을 꾸리며 잘 산다. 둘째와 셋째 딸, 막네 아들도 다 명문대를 나와 증권회사에서 일하며 의사들보다 돈을 더 잘 번다. 각자 잘 살아가면서 서로 돕고 사는 모습이 보모들의 행복이다. 처음 세 딸을 낳았을 때 시어머니에게 미안하고 죄인이었는데 미국에 와서 살아보니 세 딸들을 가진 금메달 부모가 되었다고 이웃들이 부러워하고, 실제로 딸들이 살갑게 부모를 보살핀다.
뉴욕에 고급 아파트를 가지고 있는 둘째 딸은 포르투갈 해안에 집을 짓고 있으며, 온 가족이 모여 거기서 즐거운 방학을 보낼 계획을 딸들이 만들고 있다. 딸 셋을 연년생으로 낳아 시어머님에게 죄인이었던 옛날을 돌아보며, 친구의 부인은 올림픽 금메달 열개 딴 것 보다 더 행복하다며 밝게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