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주말에 AMC 극장에서 한국 영화 ‘어쩔 수 없다’(No Other Choice)를 보았다. 박찬욱 감독의 2025년 작품으로, 이병헌이 남자 주인공 ‘유 만수’ 역을, 손예진이 만수의 아내 ‘미리’ 역을 맡았다.
만수는 한국의 한 대형 제지회사에서 간부급으로 일하는 사원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이 회사는 지난 25년간 만수에게 안정적인 일터였다. 그의 집은 부유한 동네의 큰 저택이고, 아름다운 아내 미리와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둔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이다. 집안에는 어린 딸이 연주하는 첼로 선율이 흐른다. 딸은 첼로에 뛰어난 재능이 있어 유명한 선생님에게 레슨을 받고 있다.
제지회사는 종이 수요가 줄어들고, 미국회사에 매각되는 과정에서 만수는 25년을 몸담았던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난다. 집을 팔기 위해 내놓자 사고 싶은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잘 살던 집 안팎을 둘러본다. 아내 미리는 가지고 있던 고급 가구도 사라고 말한다.
아직 다 갚지 못한 빚도 남아 있다. 가계를 돕기 위해 미리는 치과 병원에 취직한다. 무도회에서 매력적인 미리에게 접근하는 남자도 나타나고, 그녀는 유혹에 빠질 수도 있게 노출된다. 아들은 학원비 문제로 갈등을 느끼고, 딸 역시 첼로 강사를 새로 찾아야 할 상황에 놓인다. 가족에게 헌신적인 만수는 열심히 새 일자리를 찾아 돈을 벌어 가족을 지키려는 좋은 가장이다.
마침 그의 전문 분야의 일자리 하나가 광고에 올라온다. 만수는 치밀하게 준비한다. 경쟁자가 누구인지 알아보기 위해 비슷한 조건의 채용 광고를 내고, 그곳에 접수된 이력서 가운데 자신과 경쟁이 될 만한 두 사람을 골라낸다. 놀랍게도 그들은 모두 아는 사람들이다.
만수는 경쟁자 중 한명을 권총으로 살해한 뒤, 시신을 차 트렁크에 싣고 와 집 마당에 구덩이를 파 묻는다. 전기톱으로 잘라 묻을지, 철사로 옭아매 동그란 덩어리로 만들어 묻을지를 고민하는 장면은 끔찍하면서도 묘하게 코믹하다. 그는 시신을 철사로 단단히 묶어 작은 공처럼 만든 뒤 땅에 묻고, 그 위에 나무를 심어 물을 준다.
두 번째 경쟁자는 경쟁자의 별장으로 찾아간다. 두 사람은 만수가 가져간 양주를 앞에 두고 옛 우정을 떠올리며 술잔을 나눈다. 만수는 마시는 척만 하며 상대가 취하도록 유도한다. 양주 두 병을 비운 뒤에도 취한 상대는 집에 있던 술을 더 꺼내 마시고 결국 의식을 잃는다. 만수는 그를 땅에 파묻어 목만 남긴 채, 비닐 보자기로 머리를 감싸 질식시킨다. 살인 장면은 잔혹하지만, 동시에 블랙코미디처럼 그려진다.
한편 형사들은 실종된 두 사람을 찾는 과정에서 만수도 심문한다. 그 무렵 만수의 아들은 자신이 목격한 사실을 어머니 미리에게 고백한다. 첫 번째 시신을 마당에 묻던 장면을 아들은 2층 베란다에서 지켜봤던 것이다. 놀란 미리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삽을 들고 마당을 파헤친다. 심어 놓은 나무를 옮기고 땅속의 무언가를 발견한 순간, 그녀는 충격에 파헤치기를 멈춘다.
가장 강력한 경쟁자 둘이 사라진 뒤, 만수는 결국 그 전문 분야 회사에 취직한다. 그는 과거 제지회사 간부 시절처럼 작업복에 헬멧을 쓰고 현장에서 활기차게 일한다.
만수가 저지른 살인의 증거를 찾아 가지고 형사가 나타나 그를 체포하는 장면이나, 아내 미리가 마당에 묻힌 시신을 발견해 새로운 사건이 전개되기를 나는 기다렸다. 전통적인 범죄영화의 주인공은 더 큰 벌의 그물에 얽혔 죄와 벌은 동전의 양면처럼 늘 함께 따랐다. 그러나 영화는 만수가 전문인으로서 일하며 웃는 모습으로 끝난다.
가장의 실직으로 시작된 한 단란한 가정의 붕괴 위기, 아내의 노동과 그로 인한 일탈의 유혹, 아들의 방황, 딸의 재능 교육 기회 상실 같은 위기 속에서,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다시 일자리를 찾으려는 만수의 살인 행위를 영화의 제목은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하는 듯하다. 살인 사건을 다루는 영화이면서도 어둡고 비참한 분위기가 아니라 밝고 코믹한 분위기다.
이 영화는 미국 소설 《도끼(The Axe)》를 원작으로 한 박찬욱 감독의 대표작품으로, 2025년 오스카 국제영화상 후보에는 오르지 못했다고 한다. 인공지능이 빠르게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며 전통적으로 안정된 직업을 잃는 사례가 빈번한 오늘의 현실과 잘 어울리는 주제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