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인생 배우기 (49)
친구와 우정이라는 주제를 특유의 따스한 시선으로 들려주는 작가, 베스 페리의 그림책 ‘A Small Blue Whale’의 첫 장은 ‘작고 파란 고래가 있었어요’로 시작된다. ‘Blue Whale’은 흰긴수염고래 또는 대왕고래로 불리는 평균 몸길이가 20~30미터나 되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동물이다. 그런데 왜 ‘작고 파란 고래’일까?
‘Blue Whale’은 회색빛 몸이 물속에서 보면 푸르게 보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고, ‘흰긴수염고래’는 고래의 입안에 있는 먹이를 걸러내는 수염판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일본의 한자를 오역하여 붙여진 것이라 한다. 그리고 ‘대왕고래’는 말 그대로 가장 크다는 뜻으로, 학계에서는 대왕고래를 공식적인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름, ‘흰수염고래’는 ‘흰긴수염고래’를 잘못 부른 표현이라 하는데, 재밌게도 한국 사람에게 가장 익숙한 이름은 ‘흰수염고래’이다. 이런 이유에는 한 노래의 역할이 큰 듯하다.
“너 가는 길이 너무 지치고 힘들 때~ 말을 해줘 숨기지 마 넌 혼자가 아니야. 우리도 언젠가 흰수염고래처럼 헤엄쳐~ 두려움 없이 이 넓은 세상 살아갈 수 있길~ 그런 사람이길~” 가수 윤도현의 노래 ‘흰수염고래’의 한 부분이다. 이 노래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대왕고래’보다 ‘흰수염고래’라는 이름에 더 애정이 가지만 추세는 이미 ‘대왕고래’로 가고 있다. 차라리 ‘파란고래’라 했으면 더 정감 있을 텐데…….
‘A Small Blue Whale’ 그림책 속, 파란 고래는 혼자다. 그래서 언젠가 찾아올 소중한 친구를 간절히 바라고 기다린다. 아름다운 광경을 보면 ‘우정도 이런 모습일까?’, 따뜻한 햇볕을 받으면 ‘우정은 이런 느낌일까?’, 시원하고 달콤한 빗방울을 마시면 ‘이게 바로 우정의 맛일까?’ 궁금해한다. 어느 날, 하늘에 나타난 분홍 구름을 친구라 생각하며 구름을 따라 여행을 떠난다. 남쪽 바다를 여행하던 파란 고래는 함께 까르르 웃으며 놀고 있는 펭귄들을 만난다. 그동안의 기다림을 생각하면 당장 달려가 손잡고 싶지만, 고래는 먼저 조심스레 펭귄들을 살펴본다. 펭귄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도와주려 한다. 그러다 그만 얼음 위로 미끄러져 올라와 움직일 수 없게 되고, 얼음 위에 혼자 남게 된 파란 고래는 도와줄 누군가를 간절히 바라고 또 기다린다.
그리고… 고래가 그랬던 것처럼 펭귄들이 고래를 도와준다. 마침내 친구를 얻은 파란 고래는 우정이 어떤 모습이고, 무슨 맛이 나고, 어떤 느낌인지 깨닫는다.
넓디넓은 바다에 홀로 떠 있을 때, 고래는 자신이 얼마나 큰지 몰랐을 것이다.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햇빛보다 작은, 하늘을 가득 채운 노을보다 작은, 끝없이 일렁이는 파도보다 작은, 정말 작은 고래라고만 느꼈을 것이다. 그러다 하늘에 나타난 분홍 구름을 만났을 때, 고래는 그저 함께 있으면 친구라 생각한다. 가끔 비를 내려주는 구름과 달리 구름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지만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즐겁다. 그러면서 고래는 조금씩 알아간다. 친구란 내가 어떤 모습이든 그대로를 받아주고, 아무런 보상이 없어도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눠 주는 존재라는 것을. 그렇다고 받는 것을 당연시하지 않고, 항상 고마워하며, 도움을 주려 애쓰는 마음을 가진 사이라는 것을.
인간관계는 나의 의도에 따라 맺고 끊기는 것이 아닐 텐데, 나이 들면서 의도적으로 관계를 끊는 사람을 자주 본다. 심지어 피해를 주는 가족은 가족도 아니라며 정리하라는 조언이 SNS에 넘쳐난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이 무색하게 나를 다 보여주면 그게 약점이 될까 봐 께름칙해진다. 하여, 점점 관계 맺기가 힘들다. 진정한 친구가 노군지 헷갈리고, 혼자가 제일 편하게 느껴진다.
푸른 바다에 기다림을 품은 파란 고래 한 마리를 그려보면서, 친구와 우정 그리고 행복에 대해 생각한다. 지금, 나에겐 외로울 때 혼자 부를 노래와 함께 모여 수다를 떨고, 함께 맛있는 것을 나눠 먹고 픈 사람들이 있다. 또한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길 배짱도 있다.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관계가 아니라, 혼자인 여럿이 만나는 즐거움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