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나에게 급작스러운 한기가 들이닥쳤다. 갑자기 얼굴이 창백해지고 손가락 끝까지 차가워지고 저렸다. 오한으로 몸을 벌벌 떨면서 온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한 순간에 기운이 빠졌다. 방어할 새도 없이 일어난 일이었다. 약장 앞에서서 좋아질만한 약을 골라 바삐 입 안으로 털어넣었다. 주위 공기가 에어컨을 최대로 틀어놓은 양 차가웠다. 몸은 여전히 한겨울에 벌거숭이로 밖에 나 앉아 있는 것처럼 추워 떨었다. 두꺼운 겨울 파자마를 겨우 꺼내입고 제발 빨리 잠이 오기를 기다렸다. 마치 나쁜 꿈 속에서 방황하는 듯했다. 자고 일어나면 말끔히 나아질거라 간절히 믿으며 어느새 잠이 들었었나보다. 일어나보니 식은땀을 흠뻑 흘리며 한기가 나간게 느껴졌다. 오한은 사라졌지만 기운이 없었고 물에 젖은 스펀지처럼 몸은 무거웠다. 이것저것 검색을 해보며 넘치는 정보 속을 뒤적였지만, 아직도 뚜렷한 답을 못찾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요즘은 이상하리만큼 주변에 아픈 사람들이 많다. 가벼운 감기, 몸살부터,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 오랜 시간을 붙잡아두는 병까지 다양하다. 점점 만남이 어렵고 방해될까 전화 통화나 문자를 하기도 조심스럽다. 누군가는 병원을 오가고, 누군가는 조용히 수술 날짜를 기다리고, 또 누군가는 괜찮다는 말로 하루를 버텨낸다. 예전에는 ‘환자’란 그저 몸이 아픈 사람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제는 불안과 기다림 속에서 하루를 살아내고, 평범했던 일상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게 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건강할 때는 당연한 듯 자신의 몸을 잊고 살아가지만, 어디 하나 작은 곳이라도 고장 나기 시작하면 삶 전체가 그곳을 중심으로 흔들리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통증은 몸에 머물러 있지만, 병은 마음까지 천천히 파고 들어온다.
병원에 문병가는 일이 많아졌다. 문득 환자뿐 아니라 함께하는 보호자의 수척한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비장한 책임감을 가지고 작은 인기척에도 반응하고, 의사나 간호사의 말 한마디를 놓칠세라 집중하는 표정, 당혹함을 아무렇지 않게 숨기려는 배려, 병상 옆에는 늘 함께 지켜내는 사람이 있다. 가족과 이웃들 모두 환자의 통증을 대신해줄 수 없고, 티를 낼 수도 없어 불안함을 속으로 감내하고 있다. 많은 도움이 되지 못해 안타까움을 삼키며 마음 속 기도로 스스로를 다스리고 있으리라. 아픈 사람들 옆에서는 더 조용해진다. 말을 아끼게 된다. 그래서 병원이 그리 고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적막한 가운데 환자 자신에 집중하며 오늘 하루를 견디라는 최대한의 배려일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무것도 느끼지도 못하면서 괜찮다고, 괜찮을거라고 말하는 것보다 그저 옆을 지켜주는 일이 더 든든한 일일테니.
‘환자’라는 단어의 한자는 근심 환(患), 사람 자(者)이다. 환자란 몸이 병든 사람이기 전에 근심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흥미롭게도 영어로 환자를 뜻하는 patient는 ‘견디다, 참아내다’라는 뜻의 라틴어 pati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래서 patient는 환자이면서 동시에 인내심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도 있다. 병을 앓는다는 것은 어쩌면 통증보다도 불확실한 시간을 견디고, 기다리고, 받아들이는 일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다림 속에서 견디는 일. 어쩌면 그것이 병이 주는 가장 큰 고통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오한과 몸살만으로도 자고 일어나면 과연 괜찮아질지 불안한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건강할 때 너무 많은 것을 미루며 산다. 사랑한다는 말도, 운동도, 휴식도 다음 기회로 넘긴다. 그러다 병원이라는 공간 앞에 서게 되면 삶은 갑자기 단순해진다. 기본으로 돌아간다. 잘 먹는 것, 잘 자는 것, 무사히 하루를 보내는 것. 결국 사람을 살게 하는 건 거창한 성공보다 그런 평범한 순간들이라는 걸 다시 한번 새기게 된다.
부디 내 주위 많은 환자들이 무사히 시간을 넘어 다시 평범하고도 지루한 하루를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걱정 없이 잠들고, 이유 없이 웃고, 내일을 당연하게 기다릴 수 있는 날들. 생각해보면 우리가 바라야 할 것은 늘 그 정도면 충분했는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