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에 새로운 취미가 하나 생겼다. 그것은 아주 우연히 나를 찾아왔다. 지난달 버지니아주에 있는 큰딸네에 머물 적이었다. 아침에 손주를 학교로 보내고 뜰을 가로질러 한쪽에 퍼진 야생화들을 보러 가다가 하얀 클로버 꽃들이 많은 지점에 멈췄다. 처음에는 클로버 밭을 내려다 보며 꽃을 따서 팔찌를 만들어볼까? 했는데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싱그러운 푸른 잎들이 나를 잡았다.
문득 예전에 좋아했던 톰 클랜시의 소설 ‘The Hunt for Red October’가 떠올라서 나도 “The Hunt for four leaf clover” 중얼거렸다. 처음엔 허리를 굽히고 보다가 그냥 쭈그리고 앉아서 집중해서 살피며 시선을 조금씩 옆으로 옮겨갔다. 그렇게 손은 대지 않고 한참을 보는데 어디서 “나 여기 있어요” 하는 것이 있어 자세히 보니 분명 잎이 넷이었다. 기뻐서 손을 내밀어 내 행운과 만났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장소를 옮겨가며 넓은 뜰 여기저기에 무성한 잡풀들과 섞인 클로버들과 사귀었다.
매일 아침 앞뒤 뜰에서 몇 시간을 보내니 남편이 궁금해 했다. 초록색에 빠져서 명상을 한다고 설명하니 그는 픽 웃었다. 허리가 아파 거동이 불편한 그는 나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부러워했다. 풀벌레들을 제치고 네 잎 클로버를 찾는 것은 나의 시름과 세상사를 잊게 한 대단히 멋진 시간이었다. 나는 시야를 넓혀서 딸네의 뜰만 아니라 가까이 있는 공원의 풀밭도 더듬거렸다. 그리고 나를 찾아온 행운을 소중히 책갈피에 끼웠다. 내 행운은 한 지역 만이 아니라 여기저기에서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말에 북 버지니아의 와이너리에 갔을 적에 남편과 사위가 다양한 포도주를 시음하는 동안 나는 손주와 포도밭을 끼고 있는 들판에 나섰다. 블루 리지 산등성의 구비구비 휘어진 언덕에 죽 이어진 포도나무들이 주는 여유를 즐기다가 가까이에 있는 클로버 밭을 봤다. 아이와 나는 네 잎 클로버 찾기를 했다. 잠시 후에 하나, 그리고 또 하나의 네 잎 클로버를 찾자 건물 안으로 들어가 자랑스럽게 수확물을 보여줬다. 나이든 남자들이 네 잎 클로버에 흥분한 나의 얼굴을 보는 눈길은 묘했다. 손주와 같이 철부지인 나를 보는 그들은 아랑곳없이 나와 손주는 신이 났었고 나는 작은 수첩에 당당하게 행운을 끼워 넣었다.
점심을 먹었던 식당과 아이스크림 가게 옆의 클로버 밭에도 영락없이 멈췄다. 방문 하는 곳마다 클로버 밭을 보면서 평소 넓은 주위의 정경을 즐기던 내가 낮은 곳, 땅 가까이로 포커스를 내린 것을 알았다. 겸손해 졌다. 가끔 손주는 내 곁에서 손가락으로 클로버 밭을 휘저었는데 어느 날 아이가 다섯 잎 클로버를 찾고 환성을 질렀다. 다섯 잎은 이제껏 본적이 없던 나도 신기했다. 다섯 잎을 둥글게 펼쳐서 아이의 책 속에 보관해준 후 본격적인 다섯 잎 찾기에 나섰다가 며칠 후 드디어 나도 찾았다. 우리가 네 잎보다 더욱 강력한 행운을 받았음이 분명했다.
내가 찾은 행운을 연말편지에 붙여서 지인들에게 보내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필요한 주위 사람들과 나눌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버지니아를 떠나기 전날, 모든 클로버를 테이블에 죽 펼치며 잎 하나에 믿음, 잎 하나에 희망, 잎 하나에 사랑, 그리고 마지막 잎 하나에 행운이 있다고 자랑하니 가족들이 환하게 웃었다. 사실 아일랜드의 고대 켈트족의 사제였던 드루이드는 네 잎 클로버가 악령을 막는 강력한 보호력이 있다고 믿었고 또 축복을 가져온다며 지니고 다녔다니 이런 멋진 상징이 어디 있나.
그런데 이 새로운 취미는 남부에 와서도 이어진다. 운동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웃의 뜰에서 클로버 밭을 보고 다가갔다가 잠시 후 네 잎 클로버를 찾았다. 솔직히 올 초부터 건강문제로 흔들흔들 사는 남편 옆에서 나도 흔들흔들 버티는데 계속 행운을 찾으면서 심적으로 안정을 받는다. 삶이 이렇게 일차원으로 단순하니 일상이 가볍고 나의 새로운 취미가 평안을 불러오는 방안이 된 것에 감사한다. 코팅지를 구해서 내 행운을 하나씩 잘 보전해서 하나는 내 지갑에 끼워 넣고 나머지는 작은 박스에 담았다. 보석보다 귀한 소중한 보물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