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를 깎고 나면 베인 풀에서 나는 싱그러운 냄새가 좋았다. 그런데 그 향기가 풀이 내지르는 화학적 비명이라는 의견이 떠올랐다. 식물과 곤충의 의사소통을 연구하는 잭 슐츠라는 과학자가 한 말이다. 그럼 잔디를 깎지 말아야 하나? 그럴 수는 없다. 그럼 아예 잔디를 심지 말아야 하나? 다른 식물이나 꽃은 어떻게 대해야 하지?
잡지 <애틀랜틱>의 과학· 환경 전문 기자인 조이 슐랭거가 쓴 ≪빛을 먹는 존재들≫은 식물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만들었다. 슐랭거는 여러 과학자의 연구와 인터뷰를 통해 식물은 빛을 재료 삼아 광합성을 하고 사람에게 필요한 산소와 열매를 주는 존재 이상임을 밝히고 있다. 식물은 보고, 듣고, 느낀다. 다른 식물과 소통하기도 하고, 경험한 것을 기억했다가 스스로에게 유리한 쪽으로 변화한다. 놀라웠다.
식물을 쓰다듬거나 음악을 들려주면 좋아한다는 말은 하나의 비유라고 생각했다. 자연을 잘 돌보자는 차원으로. 그런데 식물은 그렇게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사람의 언어로 식물 세계를 표현하려다 보니 사람 중심의 사고를 하고 의인화하여 표현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를 함부로 댈 수 없다. 나는 자연친화적인 삶을 추구하면서도 식물이 나의 생존에 도움이 되고 기쁨을 주는 대상으로만 취급했음을 고백한다. 나는 참 이기적인 인간이다.
나는 해마다 화분이나 텃밭에 토마토나 고추를 키우곤 한다. 그리고 해마다 그 작물들 속에서 나비 애벌레들을 만난다. 애벌레가 작을 때는 발견하지 못하다가 그 배설물이 크고 많아지면 그 존재를 확실히 알게 된다. 어머나! 너희들이 다시 나에게 찾아와 주었구나, 하며 기뻐할 법도 한데 나는 그 애벌레를 환영하지 못한다. 애벌레가 나의 야채를 갉아먹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고 떼어낼 궁리만 한다. 어른 손가락보다 더 굵은 초록색 애벌레는 그의 여러 개 발로 줄기를 단단히 붙잡고 있어서 떼어내려면 손에 힘을 주어야 한다. 난 정말 그 애벌레가 무섭다. 결국은 애벌레를 떼어내든가 애벌레가 붙어 있는 가지째 잘라서 나의 작물로부터 먼 곳에 놓아둔다.
이 책에서 “식물은 애벌레들이 들러붙어 자기 몸을 한참이나 뜯어먹어도 한동안은 엄청난 자제력을 발휘하며 견딘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는 애벌레의 입맛을 떨어뜨리는 화학물질을 신중하게 자기 잎들 속에 채워 넣기 시작한다. 이때는 애벌레들 대부분이 앞으로 굶는다 해도 적어도 살아남아 변태하고 수분할 수 있을 만큼은 충분히 잎을 먹은 시점이다.” 라고 말한다. 지난날 애벌레가 나의 식물을 다 갉아먹더라도 그냥 놔둘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나에게 그 정도의 인내심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기회가 오면 실험을 해봐야겠다.
식물은 화학 성분 합성의 천재들이라고 한다. 포식자가 잎을 뜯어먹으면 가까운 친족이나 이웃에게 화학 물질을 분비하여 공기로든 뿌리로든 경고 신호를 보낸다. 이것은 식물끼리 의도적으로 의사 소통을 하는 것으로 본다. 이러한 의도성은 어느 정도 지적인 행동이라는 것이다. 식물학자 토니 트레와바스는 이건 학문적 지능이 아니라 생물학적 지능이라고 말한다. 식물에는 인간의 뇌와 같은 기관은 없지만 식물 전체에 신호를 처리하는 기관이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
식물은 촉각에 예민해서 쓰다듬으면 면역계가 활성화한다. 성장을 잠시 멈출 것인지 줄기를 더 키울 것인지 자신의 삶을 재조정한다. 해변달맞이꽃은 벌의 윙윙거리는 소리를 녹음하여 들려주면 3분만에 꽃꿀의 당도를 높인다고 한다. 나사 포이소니아나는 뒤영벌이 오는 시간 간격을 기억하고 예상한 때에 맞춰 꽃가루를 내놓는다. 이 밖에도 흥미진진한 식물 세계가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이어진다.
빛을 먹는 존재들로 식물을 소개하는 이 책은 그 식물을 먹는 사람 역시도 빛을 먹는 존재이니 공존하기 위해 서로 존중하라고 말한다. ‘내 안에 너 있다’는 유명한 한국드라마 대사가 떠오른다. 저자 슐랭거는 사람들이 식물을 바라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싶어 한다. 식물에게 가족 구조가 있고 언어가 있고 사회생활을 하는 등등의 특징을 현실로 선택할 때라고 주장한다.
공존은 선언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꽃을 심고 식물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작은 시도들로 기꺼이 나아갈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