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든파티가 끝난 다음 날이었다. 전화기 너머 지인이 다짜고짜 물었다.
“도대체 꽃들에게 뭘 준 거예요? 나도 그걸 사다가 꽃밭에 뿌리려고 식물원 가는 중이에요”
순간 웃음이 나왔다. “하늘이 꽃들을 키웠지요. 짱짱한 햇볕을 내려주고 때맞춰 비를 뿌려주었지요.” 정말일까? 물과 햇볕만으론 역부족이었다. 환하게 피어나 사람들의 시선을 붙들기까지 오래 보살피는 손길이 필요했다. 정원에서 해마다 피고 지는 장미와 치자꽃, 철쭉과 매화를 깨우기까지 이른 봄부터 꽃을 어루만지는 부부의 손길이 분주했다. “밤사이 쑥쑥 한 뼘이나 자랐네. 별보다 더 반짝거리네.” 날마다 조곤조곤 말을 건네며 눈을 맞췄다. 유기농 퇴비도 뿌려주고 봄 가뭄 내내 목이 마르지 않도록 물줄기를 뿜어주었다.
종종 덩굴장미가 병들면 자식이 아픈 양 나는 노심초사했다. 반짝거리던 초록 잎사귀에 주홍빛 곰팡이가 번지는 순간 잎들이 누렇게 변해 우수수, 하룻밤 사이에 앙상한 몰골을 드러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병들면 ‘장미 다 죽는다’라고 남편의 뒤통수에 대고 ‘오늘 밤 넘기면 안 되니 약부터 뿌려주라’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곰팡이가 번질 때마다 약을 치고 봄볕에 생기를 잃을라치면 영양제를 뿌렸다. 애지중지 돌봤더니 온갖 꽃들이 일제히 화답했다. 탐스러운 꽃송이를 내걸고 지친 마음을 만져주었다.
저녁 식사 후 남편과 나는 두어 시간 정원을 가꾸느라 땀을 줄줄 흘린다. 빽빽한 가지를 쳐내고 모란처럼 꽃봉오리가 큰 꽃들엔 버팀목을 세워 준다. 4월부터 온갖 꽃들이 기다렸다는 듯 피어났다. 우리만 보기 아까웠다. 언 땅을 뚫고 경계를 넘어 피어난 꽃들에게 감사를 건네는 것이 ‘꽃들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든파티를 열자!
아무도 보아주는 이 없는, 인적 없는 산중에 핀 꽃이 꽃이랴. 꽃도 오래 바라봐 주는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꽃이 된다. 4월 마지막 토요일, 덩굴장미와 모란이 만개한 정원에서 교회의 어르신들을 초대해 점심을 대접하기로 했다. 며칠 앞두고부터 비가 온다는 소식에, 새벽마다 하늘에 계신 임께 빌었다. ‘그날엔 제발 화창한 봄날을 허락해 주세요.’ 꽃들도 내 소망을 알고 때맞춰 활짝 피었는데 넓은 하늘은 내 속마음을 알고도 남을 거라 믿었다. 비는 꽃잎을 적실 만큼만 오락가락하다가 물러갔다. 어르신들이 꽃밭에서 점심을 드시고 정담을 나누고 떠나는 순간까지 구름이 비를 이고 있었다.
두 번째 가든파티, 5월 중순 애틀랜타 여성 문학회 종강 파티였다. 회원들은 선홍색 장미꽃 무더기 앞에서 삼삼오오 사진을 찍고, 여기저기 화사하게 피어난 꽃들과 속삭였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동요를 부르며 넌센스 퀴즈에 배꼽을 쥐었다. 고통의 비바람과 맞서며 사막의 낙타처럼 타박타박 고단한 이민의 길을 걸어냈다. 그날 정원에 핀 것은 장미와 모란만이 아니었다. 오래 견디고, 오래 버티고, 그 긴긴 터널을 용케 건너온 회원들의 얼굴에도 드맑은 꽃이 피었다.
내가 꽃을 가꾸는 이유는, 꽃을 보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서로의 지친 마음을 바라봐 주고, “네 꽃도 꼭 한 번 피워 봐” 말해 주기 위해서다. 그것이 내가 꽃들에서 배운 예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