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이 남긴 <사기>는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3000년 통사다. 사마천은 당시 자신이 섬기던 한 무제에게 밉보여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미처 마치지 못한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성기를 잘라내는 궁형을 자청하고 풀려나는 치욕을 감수했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는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사람의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 이것은 죽음을 쓰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천명과 인간세상을 통찰한 불후의 역사서를 저술한 사마천이 남자로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치욕인 궁형을 당하고 나서 그 울분을 친구 임안에게 토로하면서 죽음에 대해 한 말이다.
그는 사형을 선고받고 옥에 있었다. 지독한 고문에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여러 차례 자결을 생각했다. 하지만 사마천은 죽음 대신 수치스러운 궁형을 택했다.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아니 그 내용을 완전히 바꾸기 위해서였다. “하늘의 도는 사사로움이 없어 항상 착한 사람과 함께 한다고 한다. 백이와 숙제는 착한 사람이 아니던가. 그러나 그들은 굶어 죽었다. 공자는 일흔 명의 제자 중 안연만이 학문을 좋아한다고 칭찬했다. 하지만 안연은 항상 가난해 술지게미나 쌀겨 같은 거친 음식조차 배불리 먹지 못했다. 또 젊은 나이에 죽었다. 하늘이 착한 사람에게 베푼다고 한다면,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춘추시대 말기 도적인 도척은 날마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간을 회 쳐 먹었다. 온갖 잔인한 짓을 다하며 돌아다녔지만 하늘이 내려준 목숨을 다 누리고 죽었다. 도대체 하늘의 도는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시작으로 인간의 행위와 사상에 관한 깊은 통찰을 했다. 그리하여 복잡다단하고 다중적인 인간의 본성과 그 행위에 대해 누구보다 치밀한 분석을 가할 수 있었다. 나아가 보통사람들이 역사를 추진하는 원동력임을 확인했다. 그리하여 <사기>는 지배층 위주가 아닌 수많은 보통사람들의 역사서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 역사서의 진정한 가치는 여기에 있다. 도덕적으로 올바른 사람이 행복하고 올바르지 못한 사람이 불행하다면 도덕과 행복은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렇다면 인간이 도덕적으로 올바르게 살아야 할 까닭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하늘의 도(道), 하늘의 이치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침묵한다.
사마천이 궁형을 받은 것은 그의 나이 48세 때의 일로 3년 후 출옥했다. 그 비분과 원한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이러한 원한은 자살로까지 사람을 몰아붙이는 절망으로 통한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 않았다. 붓을 들었다. 역사와 인생의 변천과 그 실상을 적어 최후의 심판자가 누구인가를 정립하여 스스로의 사명을 통해 자기증명을 만세에 제시하려고 했다. 130권. 52만 6500자. 당시엔 종이가 없었다. 그는 이것을 대쪽[竹簡]에 한 자 한 자 썼다. 죽간 하나에 200자씩을 쓴다고 하고 20수만 쪽이 되는 것이다. 밀실에 앉아 십수년 동안 묵묵히 죽간에 글을 써넣고 있는 그의 모습을 생각하면 귀기가 엄습하는 듯하다. 사마천은 기록되지 않으면 영원히 묻히고 말 가슴 아픈 이름들을 위하여, 그들의 행적을 한 자 한 자 새겨 세상 앞에 드러냈다. 부당한 권력을 비판하고 약자를 옹호했다. 역사가 앞에서는 절대권력자도 그저 작은 먼지 같은, 지나가는 자연현상과 비슷할 따름이었다. 기록자의 기록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늙어서 더 단단해지는 삶을 살고 싶다. 그건 태도가 만든다. 늙는 것은 선택이 아니지만, 어떻게 늙을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이것이 <사기>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이다. 내가 노년에 글쓰기를 취미로 삼은 것은 참 잘 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선 글쓰기는 혼자서 즐길 수 있는 취미이고, 생산적인 취미다. 노후에 이런 취미 가진 사람은 늙지 않는다. 글쓰기는 노년기의 치매예방과 심적 안정을 얻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지난 삶을 되돌아보고 감정을 표출함으로써 불안과 우울감을 해소할 수 있다. 게다가 글쓰기는 노후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혼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창조적인 활동이다. 글쓰기를 통해 ‘내가 누구인가’를 인식하고 인생의 경험과 노하우를 사회와 공유하며 나의 존재가치를 높일 수 있다.
글을 쓰면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다. 글을 쓰는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한 정신활동을 요구한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고, 단어를 선택하며, 문장을 구성하는 모든 과정이 뇌의 여러 영역을 활성화시킨다. 자신을 돌아보며 희로애락의 순간들을 글로 옮기는 과정은 그 자체로 훌륭한 ‘치유’의 과정이다. 과거의 상처와 화해하고 힘들었던 순간들을 대견히 여기며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다. 또한 자신의 삶이 얼마나 가치 있었는지를 깨닫고, 남은 삶을 더욱 주체적으로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100세 시대, 길어진 노년기를 어떻게 하면 더 풍요롭고 건강하게 보낼 수 있을까? 나는 감히 글쓰기를 추천한다.
글쓰기와 더불어 내가 신경쓰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운동이다. 거의 매일 걷는다. 노치원에서 아침운동은 빠지지 않는다. 국민체조로 시작하여 강도 높은 파워워킹까지 1시간 30분 동안 뛰고나면 몸에 땀이 배지만, 기분은 상쾌하다. 몸과 마음이 젊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교회의 권사님들이 나를 ‘젊은 장로님’이라고 불러준다.‘ 장로라는 호칭 앞에 ’총각‘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정말 내가 총각인 줄 착각한다. 권사님이 ’총각‘이라고 불러주면 가슴이 뛴다. 늙은이의 망녕이라고 해도 좋다. 청년이라는 말 한마디에 내 마음은 청년이 된다. 그래, 내 마음은 아직 이팔청춘이다. 나에게 글쓰기는 최고의 전략적 무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