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딸 둘이 성장해서 집을 떠난 후, 딸들 방에 있던 침대를 들어내고 하나는 남편의 서재, 다른 하나는 내 서재로 만들었다. 아이들이 사용하던 책상과 책장들을 물러 받은, 좋게 말해서 서재이지 사실은 서로의 구역은 절대로 침범하지 않기로 하고 각자의 비밀스런 방을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두 방은 개인물건 잡동사니 방이 됐다. 그리고 손님이 오거나 손주들이 오면 두 방은 금지구역으로 문을 닫는다.
내 서재는 3면에 책장 다섯이 있고 영국에서 가져온 책상과 한국산 책상에 테이블이 둘 더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내 소중품과 여행지에서 데려온 기념품이 많다. 그리고 취미생활 재료들이 담긴 박스들도 책상과 테이블 아래에 수북이 쌓여 있어 어수선해도 방안에 들어서면 나를 따스하게 감싸주는 분위기라 기분이 좋은 공간이다. 집안의 점유물을 반으로 줄이겠다는 야심 찬 새해 계획에 따라 우선 내 물건부터 시작했다. 서랍과 테이블 아래위를 정리하다가 본 사진과 편지들에 집중해서 세월아 나 두고 가라며 1월을 보냈다. 마치 보물찾기 하듯이 천천히 채굴하면서 과거를, 사람을 회상한다. 그리고 책장들에 끼이지 못한 책들이 바닥에서 벽을 타고 콩줄기처럼 올라가 세운 책기둥들을 가지 치려고 하나씩 들어내서 분류했다.
책들 사이에서 브라운 봉투가 나왔다. 10년 전에 버지니아에 사시는 대학 선배님이 보내주신 ‘시민권 시험 예상문제 완전번역집’ 책이 들었다. 그때 제목을 보고 나와 상관없어 그대로 봉투속에 넣어둔 것이다. 책을 꺼내서 누굴 줄까? 궁리하며 페이지를 넘기니 그 안에 2장의 편지가 끼여 있었다. 선배님의 손편지를 읽으며 깜짝 놀랐다. 따스한 마음이 담긴 글을 그때 읽지 않았던 과오에, 더욱 답을 하지 않았던 실례에 민망했다. 편지에 붙어있던 선배님의 명함에 있던 번호로 즉시 전화했다. 선배님의 녹음 음성을 듣고, 메시지를 남겼다.
놀라운 것은 선배님의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주소가 딸네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이었다. 더욱 그 집은 내가 숲길을 걸으면서 보고 지나간 집이었다. 세상의 인연이란 참으로 묘했다. 딸에게 전화해서 나 대신 선배님께 가서 죄송함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과일바구니를 들고 가겠다는 딸에게 기다리라 하고 나는 이번에는 선배님께 딸이 찾아 뵙고 인사를 드려도 되느냐는 문자를 보냈다. 선배님은 바로 답을 주셨다. 그 집은 팔고 현재는 다른 지역에 살며 8개월전에 심장마비로 병원과 재활원을 다니신다고 하셨다. 다음 버지니아주에 가면 꼭 찾아 인사하리라 다짐하며 가만히 선배님의 연세를 보니 그분은 91세 이시다. 10년의 무관심과 10년의 과오에 나는 어지러웠다.
이어서 또 하나의 발견이 있었다. 이것은 더 오래전, 20년 전의 일이다. 태풍 카타리나가 멕시코만 지역을 강타하고 지나간 직후였다. 한 젊은 한인 사업가가 미시시피 주정부의 태풍 복구사업에 참여하고 싶다고 도움을 청했다. 그때 상공회에 근무하던 나는 하루 시간을 내서 미시시피 주도인 잭슨으로 동행해서 통역을 해줬다. 의욕이 많고 용감하게 나선 그가 복구사업에 참여하길 바라며 몽고메리로 돌아왔다. 헤어지기 전에 그가 준 책, ‘백락천’을 고맙게 받았지만 낯설어서 책기둥에 둔 것이 지난 20년 동안 더 많은 책들에 눌려 있었다.
이번에 ‘백락천’을 다시 보며 페이지를 폈다. 두보, 이백과 함께 당나라를 대표하는 삼대시인의 한사람인 백거이 (772-846) 의 시를 편저한 책이다. 한자가 많아서 주춤거리다 책 중간에 숨은 얇은 봉투를 봤다. 놀라서 열어보니 그 안에 백불짜리 돈이 두 장 들어 있었다. 웃음이 나왔다. 이런 것을 횡재라고 하는 건가? 순수한 봉사로 기억하고 있던 20년 전의 일, 이름은 생각나지만 명함도 없고 어렴풋이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그 젊은 남자의 사업체가 성공했기 바랬다. 그때 같은 동족인이라 돕고 싶었지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았기에 20년 늦었지만 돈은 돌려주고 싶다.
이렇게 대충 흘려 보낸 두번의 실례는 충격이었다. 어쩌면 살면서 나는 더 많은 실례를 범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을 갖는다. 멋진 추억과 과거 나의 삶 흔적을 품고 있는 특별한 공간이 나의 자랑과 허물을 함께 증언하고 있음을 예전에 미처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