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에 딸들에게 현재 사는 집보다 작고 관리가 쉬운 집을 하나 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큰딸은 버지니아, 작은딸은 조지아가 어떠냐는 눈빛을 주며 어떤 집을 찾는지 도와주겠다고 나섰지만 가볍게 거절했다. 추운 북부보다 따스한 남쪽이 좋겠다며 시간을 갖고 천천히 내가 직접 지역을 찾아보겠다 말했다.
사실 한 지역에, 한 집에 오랫동안 익숙한 탓에 선뜻 행동으로 옮기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앨라배마보다 더 따스한 플로리다주에 집을 사자던 남편은 언젠가부터 그 말을 멈췄다. 몽고메리에 오랫동안 거주하며 쌓은 인연이 많은데다 친숙한 의사들이 주는 안정감과 편안한 환경에서 안주한다.
가끔 나는 자식들 근처로 이사가지 않고 테네시 북부의 산간지역에 땅을 사서 집을 짓고 오손도손 살고 있는 지인 부부를 생각한다. 몇 년 전 나는 그들의 용감한 노후 안식처 결정에 놀랐었다. 자식이나 병원이 가까이 있어야 하는 70대 중반의 부부가 외진 곳에 집을 짓는다며 몽고메리를 떠났을 적에 나는 구비구비 펼쳐진 산등성이를 보며 모닝 커피를 마실 그들의 멋진 삶보다 비상시에 어떻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했었다. 하지만 분명 나는 그들을 부러워한다.
평소에 나와 취향이나 세상관점이 전혀 다른 남편과 한 집에서 알콩달콩 살지 못하는 내가 원하는 주거양식이 있다. 집 중간에 공용의 부엌을 두고 양쪽으로 남편과 나의 개인적인 생활 공간을 따로 갖는 듀플렉스에 살고 싶다고 가족들이 모였을 적에 말했다. 남편은 픽 웃었고 친정식구들은 농담으로 들었다. 양쪽으로 나눌 살림도 충분하고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방해받지 않으니 각자 자유롭고 또한 집안의 평화를 유지할 매력적인 해결책이라 나는 이 희망을 쉽게 버리지 못했다.
그때 나보다 남동생은 한수 더 떴다. 남동생은 어딘가에 넓은 지역을 구해서 중간에 큰 부엌을 가진 건물을 중심으로 주위로 우리 형제들이 각자 집을 지어서 노후를 함께 보내고 싶은 희망사항이 있다고 했었다. 공용 부엌에서 함께 식사를 해결하고 각자 자신들만의 생활영역을 유지하는 공동체 아이디어에 나도 솔깃했다. 하지만 동생의 원대한 꿈은 애초부터 가능성이 없었다. 우리 8형제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져 살고 불협화음을 이루는 것만 아니라 나이 들어 날개죽지를 잃은 상황이라 동생은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다.
머리속에 떠오른 온갖 디자인의 집을 드로잉 패드에 그리다 예전에 방문했던 한 집이 떠올랐다. 앨라배마 북서쪽에 있는 작은 도시 플로렌스의 한적한 주택가에 있는 ‘로젠바움 집’이다. 미국 건축계에 역사적인 획을 남긴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Frank Lloyd Wright)가 지은 실용적인 Usonian 건축 양식이다. 그 당시 나는 건축가의 이름과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연결시켰을 뿐 그가 지은 일반 가정집은 잘 몰랐다.
막상 찾아간 로젠바움 집은 주위의 집들과 전혀 다른, 낮고 평평한 지붕을 가진 나즈막한 붉은 벽돌집이었다. 입구에 들어서며 벽에 설치된 긴 붙박이 책장에 끌렸다. 건축분야에 문외한인 나는 그 집이 단순한 구조에 붉은 벽돌과 내구성이 뛰어난 사이프러스 목재, 콘크리트 바닥과 유리 등의 천연 자료의 특성을 최대한 고려했다는 안내자의 설명을 들었다.
주위 환경에 화합하고 친환경적인 재료들을 사용해서 아름답고 실용적인 공간의 배치를 고려한 건축가의 의도였다. 거실과 서재에 마련된 식탁이나 의자조차 건축의 일부였고 통로의 붙박이 책장이나 서랍장이 자연스럽게 어울린 설치도 특이했다. 무엇보다 많은 유리를 통해 들어온 부드러운 햇살이 인테리어 마감재인 목재에 닿아서 주던 따스함이 좋았다. 그래서 그 집안을 살펴보며 가졌던 기억을 되살려 내가 살고 싶은 집을 그렸다. 로젠바움집 같은 L 모형 집의 중간에 공동 구간을 두고 양쪽으로 남편과 나의 영역을 가지면서 두 사람 다 볼 수 있는 뜰을 중간에 마련하는 집이 완성됐다. 꿈이다.
솔직히 작년 가을부터 내 속에서 바람이 일었다. 충동적이지만 진지했다. 환경의 변화를 구하며 남편과 부딪치는 house divided 상황에서 의식적으로 자유로운 생활공간을 갖고 싶었다. 더불어 추억이 담겼다고 오랫동안 애지중지 끼고있던 집안 물건들을 정리하는 이유도 찾았다. 그래서 이중구조의 집을 현실화 시키고 싶은 꿈을 안고 차근차근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