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공유 공간 한쪽 벽에는 책상과 책꽂이로 꾸며져 있다. 책꽂이에는 책들이 빽빽하게 자리잡고 있다. 얼핏 보아도 오래된 책들이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는 교인들이 두고 간 책들일 것이다. 이 책들의 제목을 하나씩 살펴보고 싶은 충동을 가끔 느낀다. 그래서 제목들을 차례대로 읽어 나가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책이 대단히 많은 것도 아닌데 책을 끝까지 살피는데 이르지 못한다. 공유 공간의 특성상 책보다 사람이 먼저 보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한번은 이전과 다른 방향에서 제목들을 훑다가 소설 <가시고기>가 눈에 띄었다. 가시고기에 빗대어, 백혈병에 걸린 아들을 위해 모든 걸 내어주는 아버지의 사랑을 그린 이야기라고 많이 알려진 책이다. 수컷 가시고기는 알에서 새끼가 부화할 때까지 돌보다가 죽는다. 그 새끼들은 죽은 아비 가시고기의 사체를 먹으며 영양분을 얻는다. 죽은 몸까지 새끼에게 내어주는 수컷 가시고기는 이 소설의 제목이 되었다. 2000년도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이 소설은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나는 이 책이나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 보지 않아도 소설의 설정들이 눈물 콧물 빼도록 슬플 것이 분명했다. 그런 슬픔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싶지 않았다. 또, 나에게도 어린 아들들이 있었는데, 가시고기 부성애 같은 모성애를 소환하지 않아도 육아가 가능했다. 모든 면이 지체되어 있는 자녀나 건강하게 태어난 자녀를 돌보는 일은 당위였다. 나는 이 일을 오랜 시간 감당하기 위해서 감정을 중립 상태로 두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나의 아이들은 삼십 대가 되었다. 아이들과 살아가는 날들이 길어질수록 엄마로서 자녀를 사랑하는 일이 어떤 느낌인지 조금씩 쌓이고 있다. 나는 이제야 <가시고기>를 읽어볼 마음이 생겼다.
백혈병에 걸린 아이는 10살 다움이다. 아이는 철이 일찍 들었는지 자신의 치료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빠의 마음을 헤아린다. 아빠는 시인이고, 여성 잡지사 기자, 출판사에서 일하다가 그만두고 번역을 하고 있다. 다움이를 간병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이다. 다움이를 치료할 유일한 길은 다움이의 조건과 맞는 골수 이식이다. 하지만 골수 이식 공여자를 찾지 못한다. 아빠는 다움이가 견디기 힘든 항암치료를 멈추기로 결정하고 퇴원을 한다.
나는 여기까지 읽고 몸과 마음이 답답했다. 그리고 허기를 느꼈다. 찬장을 뒤지다 손에 잡히는 과자를 꺼내 왔다. 먹어도 먹어도 허기는 가시지 않았다. 한참 먹다가 과자에서 눅눅하고 전 내가 나는 것을 느꼈다. 유통기한이 서너 달 지나 있었다. 나는 과자 봉지를 쓰레기통에 구겨 넣었다. 다움이 아빠의 절망이 더 처절하게 다가왔다.
소설은 다움이에게 살아날 길을 보여준다. 다움이에게 적합한 골수 증여자를 찾는다. 아빠는 수술비를 마련하는 길을 찾다가 불법 장기매매에 대해 알게 된다. 그나마 수술은 안전한 곳에서 받을 수 있는 정보다. 아빠는 신장 기증 검사를 받았는데 안타깝게도 자신이 간암 말기임을 알게 된다. 다움이의 수술 이틀 전, 아빠는 약해진 신장이 아니라 각막을 팔아 수술비를 마련한다. 다움이 수술은 잘 끝난다.
아빠는 자신의 죽음보다 아이를 두고 떠나야 하는 사실을 두려워한다. 아빠는 다움이의 미래를 위해 이혼 후 매정하게 떠나서 프랑스에 살고 있는 전처에게 보내기로 결단하다. 다움이와 전처에게는 아빠의 상태를 비밀로 한다. 다움이가 그 사실을 알면 아빠 곁을 떠나려고 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다움이는 엄마에게 보내지는 이유도 모른 체 아빠를 바라보며 울고 또 운다.
“나의 전부인 아들아. 아빠는 죽어도 아주 죽는 게 아니란다. 세상에 널 남겨놓은 한 아빠는 네 속에 살아 있는 거란다…아빠는 언제까지나 너와 함께 앞으로 걸어가는 거란다. 영원히…”
참으로 고통스러운 아빠의 심정이 읽혀서 나도 마음이 먹먹했다.
언젠가 나의 아들이 감기에 걸려서 너무 힘들게 기침하기에, 하나님, 아들 대신 제가 아플 테니 저 기침 멈추게 해주세요, 라고 바랐던 적이 있다. 곧 바람대로 되었는데, 기침하는 게 어찌 괴롭던지 내가 왜 그랬나 싶었다. 이런 나를 아들은 좋은 엄마라고, 나는 부족한 아들을 좋은 아들이라고 부르며 이렇게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