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1
영화 ‘신의 분노’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는 죄의 갚음에 대한 응보의 정의를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이 영화는 기예르모 마르티네스의 소설 <살인자의 책>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 루시아나는 유명 추리소설 작가 클러스터의 어시스턴트이자 대필가로 일하고 있다. 클러스터에게는 아름다운 아내와 어린 딸 파울리가 있다. 그러나 어느 날, 충동적인 행동으로 클러스터는 루시아나에게 성적인 모멸감을 주고 만다. 이 일로 루시아나는 일을 그만두고 깊은 혼란에 빠진다. 딸의 이상 행동을 눈치챈 루시아나의 엄마는 마침내 이 사실을 알게 되고, 클러스터를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그러나 이 선택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법원의 소장을 받은 클러스터의 아내는 그 충격으로 이성을 잃는다. 한때 발레리나였던 그녀는 사고로 더 이상 춤을 출 수 없게 된 뒤 심각한 우울증으로 치료 중이었다. 집요한 강박에 사로잡힌 그녀는 결국 자신의 딸을 욕조에 빠뜨려 익사시키고, 뒤이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외출 후 집으로 돌아온 클러스터는 딸의 시신을 안고 오열한다.
이후 영화는 본격적으로 스릴러의 색채를 띠며 심리적 긴장감을 높여간다. 루시아나는 자신의 가족 주변을 배회하는 클러스터의 모습을 목격한다. 완벽한 범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추리소설 작가라는 점에서, 그녀의 불안은 점점 공포로 바뀐다. 건장하던 오빠들의 뜻밖의 사고, 독버섯으로 인한 아버지의 사망과 어머니의 불구까지, 그 모든 사건의 이면에서 루시아나는 클러스터의 그림자를 느낀다. 특히 독버섯에 관한 아이디어가 과거 자신이 건넨 말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녀의 의심은 확신으로 변한다. 이제 남은 가족은 막내 여동생 발렌티나뿐이다. 루시아나는 기자 에스테반의 도움을 받아 진실을 밝히려 하지만, 시도는 번번이 좌절된다. 발렌티나를 지키려 애쓰던 그녀는 클러스터가 동생에게 접근해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절망에 빠진 루시아나는 그를 직접 찾아간다. 클러스터는 이 모든 비극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은 루시아나의 죽음뿐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동생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러나 루시아나의 희생에도 클러스터는 복수를 끝내지 않는다. 루시아나의 장례식장에서 그는 발렌티나를 위로하며 친밀한 관계를 만든다.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에스테반은 이를 지켜볼 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과연 이것이 루시아나의 잘못이었는가를 되물었다. 순수했던 어린 여성이 겪은 성적 모멸감에 대한 혼란과 경계는 너무도 인간적인 것이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법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오히려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아내를 아이와 단둘이 남겨두고,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충동적인 행동을 저지른 것은 클러스터 자신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먼저 스스로에게 엄격한 책임을 물었어야 했다. 그러나 클러스터는 자기 성찰 대신 자신의 분노를 타인에게 돌렸다. 자신의 고통을 정당화하기 위해 타인에게 죄를 전가하는 선택은, 사회적 영향력과 권위를 가진 클러스터같은 사람이 손쉽게 저지를 수 있는 폭력이다. 에스테반이 클러스터를 인터뷰하는 장면에서 클러스터는 자신의 본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마치 자신이 신을 대신해 벌을 내리는 것처럼, 루시아나가 겪은 고통을 마땅한 응보로 합리화하는 그의 오만함은 타락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비열한 모습이었다.
우리는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다는 유혹에 쉽게 빠진다. 응보의 논리는 그 효과 때문에 한때 성문법으로 제도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누가, 어떤 자격으로 그 응보를 판단하는가라는 것이다. 솔로몬의 지혜를 기대하기 어려운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분노를 정의로 포장하는 순간 폭력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영화는 클러스터의 승리인 것처럼 보여진다. 하지만 인생은 그다지 호락호락하지 않다. 언젠가 발렌티나가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되는 날, 또 다른 형태의 응보가 이어지지 않으리란 보장을 누가할 수 있단 말인가.
얽히고 설킨 욕망의 굴레 속에서 응보와 용서의 길을 찾는 우리 인간의 모습이 은하수의 별처럼 어두운 밤하늘을 수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