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본당 건물과 다목적실 건물 사이에는 지붕 없는 통로가 있다. 그 통로 한쪽 끝에는 작은 꽃밭이 있고 꽃밭 가운데 큰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꽃밭에 화초가 늘 있었어도 사람들이 꽃밭으로 모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난해 봄, 꽃밭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수없이 많은 꽃송이들이 무지개 색깔로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꽃밭 주위로 모였다.
초록 풀 줄기들이 수북하게 고래등처럼 자란 위에 수백개의 주홍·흰색·빨간색·자주색 꽃들이 뒤덮었다. 화려함과 생동감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무심히 지나가던 사람들이 힐끗힐끗 꽃을 바라보더니, 어느새 꽃밭 가장자리에 모여 서서 꽃을 감상하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꽃들이 화려할수록 사람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아, 아름다운 꽃이 피면 사람들도 모이는구나. 도대체 저 꽃이름이 뭘 까?” 꽃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서 이름을 찾아보니, 서양봉선화(Impatiens)라는 이름이다. 짝사랑, 조급한 사랑이 꽃말이라고 한다.
분홍·주홍·흰색·자주색 꽃송이들이 무더기로 피어 화단 전체가 마치 거대한 한 송이 꽃처럼 웅장하게 보이니, 사람들이 꽃밭 주위로 모였다. 어느 날 의자 세 개가 놓였다. 사람들은 의자에 앉아 꽃을 바라보며 담소를 나누었다. 몇 주 뒤에는 의자가 붙은 테이블이 더 놓였다. 이어 정원용 엄브렐라 두 개가 설치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햇빛이 강한 한낮에도 화려한 꽃밭 옆 그늘 아래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꽃이 공간의 분위기를 바꾸고,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고, 결국 쉼터를 만들어낸 것이다. 꽃밭 옆 의자에 앉아 이야기하는 분들을 보니 문득 1970년대 유행하던 정 훈희의 노래 <꽃밭에서>가 생각났다.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고운 빛은 어디에서 났을까/아름다운 꽃이여, 꽃이여/이렇게 좋은 날에/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좋은 님을 아름다운 꽃밭에 만나면 얼마나 좋을까! 왜 사람들은 아름다운 꽃밭 주위로 모여들까. 왜 나도 꽃밭에 관심을 가질까. 나도 아파트가 아닌 단독 주택에 살 땐 늘 꽃밭을 만들었다. 지금 콘도에 살면서도 방 안에 5개의 꽃 화분을 기른다. 행운목에도 여러 번 꽃이 피었고, 아프리칸 바이올렛은 거의 일 년 내내 꽃을 피운다. 집안에 꽃을 기르면 꽃도 보고 방안 공기 정화에 습도 조절도 된다.
아름다운 꽃 색깔과 예쁜 모습, 꽃 향기, 보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꽃에 끌리는 것 같다. 그런데 꽃을 자세히 보면 신비하다. 풀 포기가 어떻게, 사람들도 이해 하기 힘든 광합성이라는 기능으로 스스로 살리며 자랄까. 두뇌도 없고 생각도 없는 식물이 어떻게 다양한 색깔과 모양으로 꽃을 만들고, 향기와 꿀을 만들어 곤충을 부르고, 꽃가루 교배를 하여 씨를 만드는가?
서양 봉선화는 씨가 익을 즈음 바람이 불어도 꽃씨가 툭 튀어서 멀리 날아 가고 그렇게 씨는 넓게 퍼지고 해가 거듭 될수록 꽃은 여
러 곳을 퍼져 세세 연년 생명을 이어 간다. 도대체, 생각하는 머리도 없고 생각도 없는 풀포기가 어떻게 먹이 사슬의 한 작은 조각으로 모든 생물들과 조화를 이루고, 영원을 항해 살아가는가?
우리 인생도 꽃 피는 사랑의 계절에 자녀들이 태어나고, 풀꽃들이 꽃씨를 만들어 미래를 살아가듯, 우리의 자손들이 미래를 살아 간다. 꽃을 보면 무의식적으로 생명의 신비를 느껴 꽃에 끌리는 지도 모른다.
어느 날 한 권사님이 꽃밭에 물을 주고 계셨다.
“권사님, 꽃밭에 예쁜 꽃들이 피게 만드셔서 사람들이 꽃밭으로 모여요!” “꽃이 아름답게 피니 사람들이 모이고, 그러다 보니 의자도 놓이고, 테이블도 생기고, 엄브렐라도 세워졌지요.”
“어떻게 꽃밭을 그렇게 화려하게 만드셨어요?” “시행착오였어요. 올해는 또 무슨 꽃을 심을지 생각하고 있어요.”
권사님은 두 건물 벽에 새 둥지처럼 매달린 화분으로 가서 물을 주고 계셨다. 벽에 매달린 화분 마다 팬지 꽃들이 피어 있다. 은행 나무 밑 꽃 밭에도 추운 겨우내내 노랑·흰·자주 빛 팬지 꽃들이 피어 있다. 팬지 꽃을 보니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하는 노랫말이 생각났다. 손으로 얼굴을 감싼 꼬마 여인들처럼, 팬지 꽃들이 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