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 어디 있니? 오늘 올 줄 알았는데 소식이 없어서…”
“잠시 바람 쐬러 나왔어요”
어머님의 목소리에는 서운함을 넘어 노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곁에 있던 남편의 표정도 굳어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님을 뵈러 갔다. 어머님은 쌓인 서운함과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내셨다. 나는 선생님 앞에서 꾸중 듣는 아이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점심 시간이 다 되어 갔지만, 나는 점심도 차려드리지 못한 채 그냥 나왔다. 평소 같았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명절이면 형님은 제사 마치고 친정에 가셨지만, 나는 항상 다음 날까지 남아 있었다. 어머님은 시누이들이 오는데 내가 먼저 가는 걸 좋아하지 않으셨고, 나 역시 그 마음을 알기에 당연하게 여겨왔다. 그래서였을까. 그날의 오해는 유난히 아프게 마음에 남았다.
결혼한 지 네 해쯤 되었을 때였다. 아직 모든 게 조심스럽고 배워가는 시기였다. 그 무렵, 어머님은 갑작스러운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 나는 졸업작품 준비로 밤을 새우면서도 병간호를 병행해야 했다. 다른 가족들도 틈틈이 도왔지만, 모두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나는 이 일이 당연히 내 몫이라 여겼다. 입원과 퇴원, 재활치료까지 이어지는 긴 시간 동안, 막내며느리인 나는 어머님의 손과 발이 되어야 했다.
그 시간을 지나며 어머님은 피나는 재활의 노력을 하셨고, 나는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마음을 다해 도왔다. 힘들었던 기억보다 어머님이 얼마나 애쓰셨는지가 더 선명하게 남아 있다. 내가 힘들지 않도록 배려해 주셨던 그 마음도 함께.
그 시간을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돌이켜보면 그 시기는 어머님도, 나도 많이 지쳐 있었던 것 같다.
명절 다음날, 남편이 여행을 가자고 했다. 나를 위한 마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몸이 불편한 어머님을 두고 떠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내게도 휴식이 필요할 것 같아 우리는 처음으로 짧은 여행을 떠났다.
걱정된 마음에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다. 노한 음성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친지분들이 인사하러 오신다 했으니, 우리가 다시 올 거라 믿고 기다리셨던 것 같았다. 나는 도와주시는 분이 계시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 혼자만의 안심이었다.
그날 나는 억울했고, 서러웠다. ‘왜 항상 나만?’이라는 마음이 처음으로 들었다. 그동안 어머님이 나를 특별히 아껴 주신다고 믿었다. 일찍 돌아가신 엄마를 대신해 주신다고도 여겨왔다. 가끔 싫은 소리를 들을 때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따뜻한 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당신 아들에게는 아무 말씀 없으시면서, 나에게만 쏟아지는 말들이 유난히 버겁게 느껴졌다. 엄마의 빈자리가 흉이 되지 않게 하려고 애써왔던 마음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그 앞에서 나는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그 순간,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오래된 설움이 고개를 들었다. 그 감정은 깊은 상처로 남아, 오랜 시간 나를 힘들게 했다.
그날 이후, 항상 잘 하려고 애써온 마음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사춘기 아이처럼 삐뚤어진 감정이 때때로 마음을 휘젓고 지나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부족함을 탓했고, 소심한 성격과 싸우며 애써 다시 괜찮은 사람이 되려 했다. 시간이 무심히 흐른 뒤에도 사소한 감정이 나를 덮칠 때면 비로소 알게 된다. 묵은 감정들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내 안에 숨어 있다는 것을.
지금 나는 항암치료 후의 관절통과 손과 발의 저림을 견디며,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을 아픔 속에서 버텨내셨을 어머님을 떠올린다. 세상을 떠난 지 여러 해가 흘렀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보고 싶고, 그리움이 깊어진다.
그때 어머님은 얼마나 외롭고 지치셨을까. 그리고 그때의 나는 너무 어리고 덜 자라 있었다. 이제야 조금은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오래된 감정은 잊고 살 뿐, 사라지지 않는다.
세월이 흐르며 어떤 감정은 ‘이해’로 덮이고, 어떤 감정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 감정들을 조금 더 따뜻하고 현명하게 바라보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