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대법원이 지난 4월 1일 ‘출생시민권’ 위헌 여부 재판을 열었다. “부모의 체류 신분에 따라 출생 시민권을 제한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의 위헌 여부를 따지기 위해서다.
미국 수정헌법 14조는 “미국땅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 미국 시민권을 보장”한다. 수정헌법 14조가 보장한 이 원칙은 156년 동안 미국 정체성의 토대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시민권자, 영주권자의 자녀만이 미국 시민권을 가질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비자 등 합법적으로 체류중인 이민자들의 자녀들이 미국 시민권을 거부당할수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미 미국 시민권을 가진 한인들과 이민자들마저 위험할수 있다”는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시민권 박탈(denaturalization) 조사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시민권 취득 귀화 과정에서의 사소한 오류나 누락도 수십 년 후 시민권 박탈의 근거로 삼겠다는 뜻이다. 아시아계 작가이자 인권운동가인 헬렌 지아(Helen Zia)의 경고는 명확하다. “출생 시민권 제한은 미래뿐 아니라 과거에도 적용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시민권 정책으로 가장 위기에 빠진 이민자 집단은 쿠바, 베네수엘라, 이란계 이민자이다. 원래 쿠바계와 베네수엘라계 이민자들은 한때 미국 이민 정책의 수혜자였다. 그들은 망명자, 난민 자격으로 미국에 입국한 후, 미국 정부의 환영을 받으며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그러나 이들 시민권을 획득한 후,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이민 정책을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전형적인 “사다리 걷어차기”다. 그런데 이제 자신의 동포들이 그 사다리에서 떨어지고 있음을 깨닫고 있다. 쿠바, 베네수엘라 난민, 망명자들의 임시보호신분(TPS) 대상인 가족이 추방 위기에 놓이자, 이들 이민 공동체 내부에서 균열이 시작됐다.
출생 시민권 논쟁의 본질은 법리가 아니라 정치다. 미국 헌법 수정 14조는 “미국에서 출생하거나 귀화하고 그 관할권에 속하는 모든 사람”을 시민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관할권에 속한다’는 문구의 해석을 둘러싸고 정치적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합법, 불법 체류자의 자녀가 ‘관할권에 속하는가’라는 질문은 법적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할 것인가”라는 정치적 선택의 문제다.
한인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고생하며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한인들이, 같은 한인들을 “체류 신분이 없다”며 배제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 그러나 ‘배제의 정치’를 지지했던 사람들도 역시 ‘배제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트럼프 행정명령은 보여주고 있다. 시민권의 토대가 무너진 후에는, 시민권자 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