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었다고 집에서 벽만 보고 있으면 안 돼. 일해야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지!”
지난 2일 일본 사이타마현 아사카시 외곽에 있는 리사이클링 회사 ‘파워세라’의 작업장.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맞춰 자누마 아키오(蛇沼昭男·77)씨가 연신 비누칠을 한다. 그가 청소하고 있는 것은 중고 세탁기. 느리게 이뤄지지만, 그의 손이 닿은 세탁기는 새것처럼 반짝반짝 윤이 났다.
전기관련업에 종사하던 그는 60세에 정년퇴직을 하고 이 일을 시작했다. 일주일에 세 번 출근하는데 ‘목적’이 있다. 두어 달에 한번 취미인 노래 부르기를 위해 노래 주점에 가는 것이다. 그는 “노래 부르겠다고 아내 지갑에 든 돈을 쓰겠다고 하면 안 되니까”라며 “앞으로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일하고 싶다”고 했다.
파워세라의 직원은 70여명. 이 가운데 65세가 넘는 인력은 10%(7명)로 최고령 직원은 84세다. 혼다에서 설계일을 하다 퇴직한 가토 마사카즈(68)씨는 이곳에 주 4일 출근해 인터넷 경매에 올릴 사진 촬영과 에어컨 상태 확인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사진 찍는 것이 취미였는데 우연히 촬영 관련 일을 찾게 돼 이곳에서 일하게 됐다”며 “정년퇴직을 하면 사회와의 연결이 사라지는데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할 수 있어 만족한다”고 말했다.
파워세라 우테나 신지(臺真樹) 대표는 “운전사를 비롯해 일부 작업 분야에선 일손이 부족해 사람을 채용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젊은이들은 힘들다고 쉽게 그만두는 일도 어르신들은 묵묵히 열심히 안정적으로 해줘, 이제는 어르신 직원 없이는 회사가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필수 인력이 됐다”고 말했다.
저출산 고령화로 심각한 일손 부족 상황을 맞이한 일본에서 ‘일하는 시니어’가 늘어나고 있다. 총무성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일을 하고 있는 65세 이상 인구는 943만명. 2015년(732만명)에 비해 불과 10년 만에 211만명이 불어났다. 취업률도 같은 기간 21.7%→26%로 훌쩍 올라섰다. 65세 이상 노인 4명 중 1명꼴로 일하고 있단 얘기다. 연령대로 나눠보면 추세는 확연히 드러난다. 지난해 기준 65~69세 취업률은 54.5%, 70~74세는 36.2%, 75세 이상은 12.6%에 달한다.

일본에서 일하는 노인이 늘어난 배경엔 정책 지원이 있다. 2004년 고령자 고용안정법을 개정해 정년은 60세지만 기업이 65세까지 고용 노력을 하도록(2006년 시행) 한 데 이어, 2020년 또다시 법을 고쳐 이듬해 4월부터는 70세 고용 ‘노력 의무’를 기업에 부과하기 시작했다. 70세까지 취업 기회를 줄 수 있도록 정년을 늘리거나, 재취업을 지원하고, 프리랜서·업무위탁 등의 다양한 형태로 일할 기회를 주라는 취지다.
경제 침체에서 벗어나며 사회 전체적으로 일할 사람이 부족해진 것도 원인이다.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지난해 일본 대졸자 취업률은 98.1%로, 1997년 조사 이후 최고치였다.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업종, 일자리를 ‘골라가는’ 분위기 속에서 일손이 필요한 기업들은 고령층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계속(継続) 고용제도’가 안착한 것도 특이점이다. 정년이 지난 뒤에도 형식적으로는 퇴사 형태를 취하지만 같은 회사에서 관련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고용 유지 시 보조금 지원은 물론 중소기업에 대한 제도 설계 지원도 한다. 고령·장애·구직자 고용지원기구(JEED)를 통해 중소기업에 어드바이저를 파견해 정년연장 등 제도 설계도 돕고 있다.
김명중 닛세이기초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정년을 늘리면 기업에 큰 인건비 부담이 발생하기에 많은 일본 기업들이 일단 고용관계를 종료시킨 후 새로운 노동조건에서 재고용하는 계속 고용 제도를 선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일본 기업들은 계속 고용으로 인한 보수 저하로 근로자의 생산성이 낮아지는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면서 “최근엔 생산성 향상과 노동력 부족 상황을 고려해 정년을 연장하거나 정년 폐지를 선택하는 기업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양한 일자리도 만들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스폿 워커(spot worker)다. 회사에 매이지 않고 하루 한 시간 이상 초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들을 지칭하는데, 이 분야에서도 시니어층의 증가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은행과 증권회사에 다니다 퇴직한 다나카 마사노리(63)씨는 최근 5년간 1400번이 넘는 초단기 일을 하고 있다. 지난달 30일엔 프렌치 레스토랑 안내와 서빙일을 택해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구비하고 나타났다. 스폿 워커 일자리 중개 앱인 ‘타이미’를 이용하는데, 이력서도 면접도 필요 없다. 스마트폰으로 원하는 일자리를 검색해 신청 버튼만 누르면 종료. 하루 4~6시간 일하는데, 당일 급여를 받는다. 그는 “주식을 갖고 있거나 투자하고 싶은 회사에서 스폿워커를 해보기도 한다”면서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어 정말 만족한다”고 했다.
타이미에 따르면 60세 이상 이용자는 2024년 16만2000명에서 지난해 30만명으로 늘어났다. 65세 이상 이용자 역시 5만5000명에서 11만명으로 두 배 가량 증가했다. 회사 관계자는 “최고령 이용자가 90세”라며 “일손 부족 시대에 숙련된 인력을 필요로 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어 앞으로도 시니어 활약이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니어만 고용하는 기업도 생겨나고 있다. 미야기현 센다이시에 있는 지바푸드는 최근 몇 년 새 할머니 할아버지가 일하는 식당을 만들기 시작했다. 일본 전역 70곳의 식당과 파트너 계약을 맺었다. 이를 통해 올해 말까지 만들어질 노인 일자리는 1000여개. 솜씨 좋은 어르신들이 직접 주먹밥을 쥐고 된장국을 끓여내는데, 입소문을 타면서 센다이시 오마치에 있는 마치나카식당은 지난 7일 점심 영업 시작 2시간 만에 주먹밥이 완판됐다.
나가노 겐타(永野健太) 지바푸드 대표는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시니어가 활약할 기회를 많이 만들게 된다면 미래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며 “앞으로는 건강한 시니어를 확보한 기업이 성공할 수 있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사카·센다이=김현예 특파원 hykim@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