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도 깊은 시월 중순인데도 애틀랜타 우리 콘도 정원엔 빨간 철쭉꽃이 피었다. 앙코르 철쭉(encore azalea)이라고 부르는 꽃들이 봄에도 피더니 가을에도 빨갛게 무더기로 피어 있다. 꽃으로 날아가는 노란 나비 한 마리를 쫓아가보니, 뒤엉벌(bumble bee) 한 마리가 꽃송이 속에 뒹굴고, 노란 나비는 팔랑팔랑 지붕위로 날아간다. 지붕 위 파란 가을 하늘에 두둥실 흰구름이 떠있다. 문득 기르던 호랑나비가 지붕위로 날아가던 생각이 났다.
미국 교수 생활 초기였다. 여름 방학 동안 현직 초등학교 교사들을 위한 2주 재교육 시간에, 미스 스미스라는 여교사가 아침 개강 전에 나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그녀가 들고 있는 것은 풀잎사귀와 풀잎사귀 위에 있는 작은 벌레였다.
“호랑나비 애벌레인데 학급에서 길러보면 좋을 것 같아 가지고 왔어요. 제 클래스에서는 애들과 매년 애벌레를 길러요. 애벌레가 변하여 호랑나비가 되는 호랑나비의 라이프 사이클을 관찰하며 애벌레를 돌보는 애들이 너무 좋아해요.”
미스 스미스가 내 민 밀크위드라는 초록 풀잎 위에 길이가 1 센티 정도의 작은 애벌레가 꼼지락거리며 기고 있다. 노란 색과 검은 색 무늬를 가진 애벌레였다.
그녀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녀와 함께 2리터 플라스틱 우유 통 네 벽 중에 한 벽을 가위로 잘라 내고, 바닥에는 젖은 스폰지를 깔고, 애벌레가 붙어 있는 밀크위드 풀잎을 스폰지에 꽂았다. 호랑나비 애벌레 집을 교실 창 가 문설주 뒤에 놓았다.
매일 아침 학생들이 호랑나비 애벌레가 먹는 밀크위드를 가져왔다. 벌레를 싫어하던 학생들도 관심을 가졌다. 처음엔 잘 보이지도 않던 애벌레는 꼼지락거리며 껍질은 벗고 쑥쑥 자랐다. 2주동안 4번 껍질을 벗고 자라 중지 손가락만큼 자랐다. 머리 앞엔 더듬이 한 쌍이 길게 뻗어 나고, 앞 마디에는 여섯 개의 다리가 있고, 여러 마디마다 두 개씩 다리가 붙어있다.
두 주간의 여름 워크샵이 끝날 때, 워크샵에 참여했던 선생님들은 손가락만큼 자란 애벌레가 번대기가 되고 호랑나비가 되는 신비한 과정을 관찰하지 못해 아쉬워하며, 자기들 반에서도 호랑나비를 기르겠다고 하며 떠났다.
빈 교실에 있던 애벌레를 집에 가져와 거실 창틀에 놓아두었다. 집에 온지 이틀 만에 7cm쯤 길던 애벌레는 플라스틱 우유통 꼭지에 매달려 4cm쯤의 초록색 번데기로 변했다. 커다란 애벌레가 초록색 번데기로 변해 먹지도 않고 죽은 듯 매달려 있다.
옥돌로 깎은 장식품 같은 번데기에 황금빛의 무늬가 나타나고 날개 윤곽에 까만 색깔이 짙어졌다. 드디어 번데기 머리 부분의 껍질이 갈라지고 까만 호랑나비의 머리가 나왔다. 곧이어 까만 다리가 나와서 허우적거리더니 갈라진 껍데기에서 몸통이 나왔다. 날개는 처음엔 주름진 까만 나뭇가지 같았으나 천천히 펴지기 시작했다. 다리를 하나하나 들어서 허우적거렸다. 동그랗게 말린 대롱 같은 입을 폈다가 말았다. 그 입으로는 이젠 풀을 먹진 못하고 꿀이나 수액을 먹을 것이다. 날개를 천천히 벌렸다가 접었다. 접혔던 날개는 이젠 펴져서 황갈색 바탕에 까맣고 하얀 무늬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아들, 아내와 나는 황홀해서 핸섬한 호랑나비의 탄생을 지켜보았다. 호랑나비가 붙어 있는 밀크 통을 앞마당에 가져가서 들고 기다렸다. 드디어 호랑나비가 날기 시작했다. 팔랑 팔랑 날개를 움직이며 마당을 돌고는 집 지붕위로 사라졌다. 우리 가족은 호랑나비가 사라져 간 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위대한 기적에 참여한 감동이었다.
작던 애벌레가 껍질을 벗고 자라는 모습, 큰 애벌레가 죽은 듯한 번데기로 변한 모습, 번데기에서 호랑나비가 탄생하는 모습, 자동차가 어셈블리 과정을 거쳐 완성되듯이, 호랑나비도 그런 과정을 거쳤다. 그 과정 속에 호랑나비 자유의지가 얼마나 작동되었을까? 자유의지라면 애벌레 때 먹이를 찾아 먹는 작업이 전부 아닐까? 먹고 몸 자라기, 껍질 벗기, 번데기, 나비로 변하는 과정은 어떻게 만들어 졌을까? 신, 아니면 진화의 결과인가. 내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내 자유의지가 작동된 것은 호랑나비와 뭐가 다를까, 내 자유의지라는 것도 진정 내 것일까?
수백 종의 나비들은 알-유충-번데기-나비로 바뀌는 과정은 같으나 겨울 나기는 다르다고 한다. 추운 겨울을 알, 유충, 번데기, 성충으로 나기도 하고 북미의 호랑나비는 몇 천 마일을 날아 멕시코의 조그만 산기슭에 가서 겨울을 나고, 봄이면 다시 몇 천 마일을 와서 밀크위드 잎에다 알들을 낳는다. 그렇게 대를 이어 수백만 년을 살아 간다고 한다.
직접 애벌레를 키워 보니, 작은 나비 한 마리의 생존과정이 신비하고, 모든 생명들이 신성해 보인다. 미운 짓을 하는 내 이웃도, 미운 짓 보다는 신성한 부분이 너무 커서 용서하고 화해해야 하지 않을까? 나의 삶 속에도 내 의지와 노력 밖의 신비로운 은혜가 보여 겸손해지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