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오랫동안 이민자, 망명자들의 나라였다. 영국에서 종교적 박해를 피해 온 망명자들이 미국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러한 망명의 개념은 점차 확대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VAWA(여성폭력방지법) 에 따른 U비자이다. 이 비자는 성범죄 피해자 및 가정폭력 피해자의 경우 과거와 상관없이 미국내 합법적 신분을 보장해주고 영주권의 길을 열어주는 제도다. 이 제도는 피해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한편, 경찰 및 정부기관이 성범죄 및 가정폭력을 수사할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정책의 변화는 범죄 피해자와 가정폭력 피해 이민자들의 고통의 깊이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서바이버 저스티스 센터(Survivor Justice Center)의 카르멘 맥도널드(Carmen McDonald) 사무국장은 “이민단속 강화로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신고가 급감했다”고 지적한다. 폭력의 피해자들이 도움을 요청하는 순간 추방될 수 있다는 공포가 그들을 침묵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이민자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U비자와 VAWA(여성폭력방지법) 비자의 심사 과정은 더욱 까다로워졌다. 타히르 정의센터(Tahirih Justice Center)의 모건 와이벨(Morgan Weibel) 변호사는 “법원에서 보호명령을 신청하러 온 피해자가 이민단속국(ICE)에 체포되는 사례가 발생했다”며 안전해야 할 공간에서조차 이민자들이 위협받고 있음을 강조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성별 관련 망명 신청의 기준이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와이벨 변호사는 “최근 법무장관의 결정으로 성별 기반 망명 신청자들은 더 많은 증거와 증언을 제출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이는 변호사 없이 망명을 신청하는 생존자들에게 거의 넘을 수 없는 장벽이 되고 있다.
가정폭력 지원단체들도 재정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태평양 아시아계 가족센터(Center for the Pacific Asian Family)의 파티마 코몰라밋(Patima Komolamit) 사무국장은 “최근 자금 지원 제한으로 이민자 피해자들을 위한 서비스 제공이 더욱 어려워졌다”고 토로한다. 언어 장벽과 이민 신분을 이용한 협박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필요한 지원이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이민자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를 위한 법적 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성별에 기반한 망명 사유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지역 경찰과 이민단속 기관을 분리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또한 피해자의 비밀 보장이 철저히 이루어져야 신고를 꺼리는 ‘냉각 효과’를 방지할 수 있다.
이민자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침묵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 안전의 위기로 이어진다. 피해자가 신고를 두려워할수록 가해자는 더 큰 면죄부를 얻게 되고, 폭력의 순환은 계속된다.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의 인식 개선과 미디어의 관심, 그리고 정책적 변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침묵을 강요받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이 안전하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국경을 넘어 온 이들이 또다른 폭력과 공포에 시달리지 않도록, 우리 사회는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의 손길을 내밀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