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녀 관계는 우리가 경험하는 가장 첫 번째이자 가장 오래 지속되는 관계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절대적인 의존과 헌신, 그리고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맺어진다. 다른 관계들은 어느 정도 대등한 입장에서 시작하거나 선택의 여지가 있지만, 부모와 자녀 관계는 선택의 여지없이 시작되며, 이 뿌리 깊은 유대 속에서 형성된 역할과 기대가 성인이 된 후에도 쉽게 변하기 어렵다.
부모가 성인 자녀를 대할 때 느끼는 감정은 깊은 사랑을 기반으로 하지만, 그 안에 여러 복잡한 감정들이 얽혀 있는 신비로운 영역이며. 늘 한 방향으로 흐르지는 않는다. “집에 온다니 반갑고 좋은데, 막상 며칠 지내고 돌아갈 때면 홀가분한 기분이 든다”는 말에는, 사랑과 피로가 동시에 뒤섞인 복잡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자녀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부모는 여전히 “내 새끼”를 맞이하는 설렘을 느끼지만, 자녀가 불편함 없이 편안하게 머물다 갈 수 있도록 많은 신경을 쓰게 된다, 마음 살피고, 말 한마디도 조심해야 하는 ‘접대 모드’로 긴장 상태에 들어간다. 평소 조용히 지내던 집에 생활 리듬이 깨지고, 일상의 고요가 사라질수록 “손님이 온 것 같다”는 느낌은 더 뚜렷해진다. 부모들은 알게 모르게 에너지 소모와 함께 작은 부담감을 느끼곤 한다. 그래서 자식이 올 때 반갑고, 돌아갈 때 또 다른 의미의 안도감을 느끼는 것은, 자식을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사랑과 부담이 동시에 작동하는 자연스러운 심리다.
다른 극단에는 이른바 ‘자식 감옥’에 갇혀 사는 부모가 있다. 전화 한 통, 메시지 하나에 하루 기분이 오르내리고, 연락이 없으면 버려진 것 같은 서운함과 우울함이 밀려온다. “애가 요즘 왜 이리 조용하지?”라는 말은 단순한 궁금증이 아니라, “나는 아직 이 아이 삶에서 중요한 사람인가?”라는 불안의 다른 표현일 때가 많다. 내가 널 위해 얼마나 희생했는데 하며 자신의 노력에 비해, 자녀의 행동이 못 마땅한 생각이 들며, 자녀가 찾아오면 비로소 존재감이 살아나는 듯해 마음이 환해지지만, 다시 돌아가고 나면 집 안에 고요 대신 공허가 내려앉는다. 문제는 이 공허를 스스로 감당하기보다, 자녀의 연락과 방문으로 메우려 할 때다. 그렇게 부모는 자녀의 일정을, 자녀는 부모의 감정을 눈치 보며, 서로가 서로의 인질이 되는 관계 속에서 지쳐간다.
이런 현상 뒤에는 ‘빈 둥지’가 된 집에서 부모가 겪는 정체성의 공백이 자리 잡고 있다. 수십 년 동안 “누구의 엄마 아빠”로 불리며 살아온 사람에게 자녀의 독립은 단순한 분가가 아니라, 삶의 직함이 사라지는 사건에 가깝다. 아침에 신경 쓸 사람도, 밤늦게까지 걱정할 사람도 없어진 자리에는 안도보다 허무가 먼저 들어온다. 이 허전함을 견디지 못하는 부모일수록 자녀에게 더 자주 전화하고, 더 깊이 간섭하고, 더 강하게 감정적으로 매달리는 경향이 나타난다. 자녀 입장에서는 사랑이 아니라 부담으로 느껴지기 쉽고, 부모는 “내가 너를 위해 희생한 게 얼마나 많은데”라는 억울함과 섭섭함을 가슴에 쌓아간다.
그러나 성인 자녀와의 관계는 어느 시점부터 서로의 삶을 가진 ‘어른-어른’의 관계로 바뀌어야 비로소 안정된다. 자녀는 더 이상 부모의 삶 속에서 늘 곁에 있어주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 선택과 책임으로 인생을 꾸려가는 독립된 사람이다. 부모가 이 사실을 인정하고 한 발 물러설 때, 관계의 온도는 비로소 적당한 거리에서 유지된다. 너무 가까워서 숨 막히지도, 너무 멀어서 남남 같지도 않은 거리, 불쑥 연락이 와도 반갑고, 한동안 연락이 뜸해도 관계가 흔들리지 않는 거리 말이다. 이 거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부모는 끝없이 섭섭하고 자녀는 끝없이 미안한 관계가 계속된다.
결국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부모 자신의 삶’이라는 과제가 놓여 있다. 자식이 커서 떠나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애초에 예정되어 있던 결말이다. 문제는 자식이 자기 인생을 살아가기 시작한 후에도, 부모가 여전히 자식의 존재를 자신의 활력, 자기 가치의 원천으로만 붙들고 있는 구조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부모 역시 새로운 일상의 축을 세워야 한다. 늦게 시작한 취미, 마음이 맞는 친구와의 모임, 작지만 규칙적인 일, 배우고 탐구하는 시간들은 “나도 내 삶이 있다”는 인생으로 바꾸는 조용한 도구들이다. 자식을 내려놓을수록 사랑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가볍고 건강한 모습으로 변해간다.
자식이 집에 올 때 반가우면서도, 돌아가는 뒷모습에 안도감을 느끼는 부모, 연락 한 통에, 울고 웃는 부모, 모두 시대가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초상들이다. 다만 거기서 머무를 것인지, 그 지점을 출발선으로 삼아 ‘부모 이전의 나’를 다시 찾아 나설 것인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자녀가 아닌 자신을 중심에 두는 삶이 시작되는 순간,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비로소 의무와 죄책감의 굴레를 벗어나, 서로의 인생을 응원하는 느슨하지만 든든한 동행으로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