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중학생이 될 때까지 오줌싸개였어요.”이웃과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때, 전문의사로 미국에서 많은 봉사를 하시고 은퇴하신 분이 말했다. 6·25전쟁 때 시골의 공무원이셨던 그분의 아버지는 인민군에게 붙들려간 뒤 돌아오지 못하셨다. 하루아침에 가장을 잃은 가족은 피난길에 올랐고, 젊은 홀어머니는 위로 두 딸과 막내아들만 데리고 떠났다. 다섯 살이던 그녀는 친척집에 맡겨졌다.
낯선 집에서 가족을 그리워하며 지내던 다섯 살 여자아이. 얼마 뒤 다시 가족 품으로 돌아왔지만, 어린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지워지지 않았다. 그녀는 중학생이 될 때까지 이불을 적셨고, 아이들은 “오줌싸개”라며 놀렸다. 키를 뒤집어쓰고 소금을 얻으러 다니던 어린 소녀는 사람을 피했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언니들이 읽던 책이 친구가 되었다. 책 속으로 숨어든 아이는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 칭
찬을 받을 때마다 오줌싸개라는 수치심이 조금씩 옅어졌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과잉보상(overcompensation)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머리가 좋아서 공부를 잘한 것이 아니었어요. 오줌싸개라는 열등감을 지우고 싶어서 공부밖에 붙잡을 것이 없었던 거예요.” 그녀는 반에서 일등을 했고, 그것은 장학금을 받으며 명문 의과대학에 진학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미국으로 건너와서는 평생 의사로 수많은 환자를 돌보다 은퇴했다.
“와! 어린 시절의 상처가 사람을 이렇게도 살릴 수 있군요.” 나는 나도 모르게 손을 내밀어 그 분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나도 오줌싸개였기에, 그분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처럼 들렸다. 나는 공부를 특별히 잘하는 머리를 타고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소백산 깊은 산골 화전민의 아들이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재능보다도 포기하지 않는 힘 덕분이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 힘 역시 오줌싸개라는 수치심 속에서 살아남으려 애쓰던 어린아이의 몸부림에서 시작된 작은 싹이 계속 자란 덕분이 아니었을까?
1960년대 세계를 뒤흔든 <냉혈(In Cold Blood)>이라는 소설과 영화를 나는 읽고 보았다. 주인공 패리 스미스 역시 어린 시절 오줌싸개였다. 어린 시절의 학대와 깊은 트라우마를 안고 자란 그는 끝내 냉혹한 살인자가 되었다. 한국의 대도 조세형도 한때는 하나님을 만나 새사람으로 거듭난 듯했지만 결국 다시 옛길로 돌아갔다. 그도 어려서 오줌싸개였다. 보스턴의 교살자 앨버트 드살보, 소련의 연쇄살인범 안드레이 치카틸로, 미국의 ‘흡혈귀’ 리처드 체이스…알려진 여러 범죄자들에게도 어린 시절의 깊은 상처와 야뇨증이 있었다고 한다.
파괴된 가정에서 많은 상처를 받고 전쟁고아처럼 살아남아 야뇨증을 가졌던 한 아이였던 내가 연쇄살인자나 반사회적인 사람이 되지 않고 생산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왔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고 감사하다. 같은 상처가 어떤 사람에게는 칼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디딤돌이 된다. 오늘날의 진화된 사회는 상처 입은 아이들이 디딤돌을 붙잡을 수 있도록 돕는다. 그래서 그 아이들이 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돕고, 사회도 그들이 반사회적인 행동으로 인해 불행해지지 않도록 노력한다.
전쟁의 혼란과 가난, 무질서한 세상 속에서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컸던 상처를 안고 살아남은 사람들 가운데에는 패리 스미스 같은 반사회적인 사람도 많고, 환자를 살리는 의사 같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같은 상처를 받고 같은 야뇨증을 겪었는데도, 어떤 이는 사회를 해치는 사람이 되고 어떤 이는 사회를 살리는 사람이 된다. 그 갈림길은 어디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수치심을 보상해 준다고 느꼈던 학교 공부도 내가 특별히 뛰어난 지능을 타고났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지적 능력이 크게 부족했다면 그 길조차 갈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타고난 기질도, 어린 시절 겪은 트라우마도, 나를 붙들어 준 조건들도 모두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나는 삶이라는 무대 위에서 내게 맡겨진 배역을 연기하는 배우와 무엇이 다를까. 내가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왔다고 믿었지만, 돌아보면 나는 내게 주어진 조건들 속에서 살려진 존재였다. 만약 내가 패리 스미스의 유전적 기질과 성장 환경, 그가 겪었던 모든 상처를 똑같이 안고 태어났다면 과연 나는 그와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젊은 시절에는 왜 하필 내가 그런 악조건 속에 태어나 그런 상처를 겪어야 했는지 원망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늙어서 삶을 돌아보니, 그 상처는 나를 무너뜨리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나를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는 사람으로 빚어 가는 과정이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내게는 불행으로만 보였던 상처가 어느 날부터 디딤돌이 되어 있었고, 그 위를 밟으며 여기까지 걸어왔다.
먹구름 가장자리에 은빛이 비치듯, 인생도 멀리서 돌아보면 가장 어두웠던 시간들이 가장 깊은 빛을 품고 있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오늘 나는 지나간 고난을 원망하기보다 감사하려 한다. 그 고난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