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일해서 투표할 시간이 없다” “투표하면 배심원 재판에 불려나가는게 싫다” “투표하면 정치광고, 전화가 귀찮을 정도로 많이 온다” “미국 여권이나 시민권 서류를 못찾겠다” 유권자 등록 과정에서 한인들에게 듣는 말이다.
미주 한인들은 미국 선거에 관심없고 투표도 하지 않는다. 새삼스러운 사실이 아니다. AAPI 데이터에 따르면, 투표 자격을 갖춘 미주 한인 유권자는 100만여명 미만이며, 이중 58%만이 투표를 한다.뒤집어 말하자면, 미국에서 이민자들이 투표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보여주는 사례다.
그런데 미국에서 투표를 더욱 힘들게 만드는 법안이 나왔다. 유권자 신분검사 강화 법안(일명 SAVE 법안)이다. 이 법안은 투표 때 유권자 신분증 및 미국 시민권 증명 제시 의무화(미국여권, 출생증명서, 시민권 증서 등), 그리고 우편투표 금지 등을 규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SAVE 법안 통과없이 다른 법안에 서명하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SAVE법안을 주장하는 이유는 “부정선거 방지” 때문이다. “불법체류자와 비시민권자가 미국 시민권자를 가장해 투표하고, 부정선거로 미국 선거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언뜻 보기에 “부정선거를 막기 위해, 미국 시민권 여부를 조사하겠다” “투표하고 싶으면 신분증을 만들면 되지 않냐”는 주장은 타당해보인다. 그러나 위의 한인들 사례만 봐도, “비시민권자가 부정선거를 저지른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
첫째, 비시민권자의 투표는 번거롭고 위험하다. 비시민권자가 미국 선거에 투표하면 이민 신분을 빼앗기고, 최악의 경우 추방당할수 있다. 투표 한번으로 인생을 망치고 싶은 비시민권자는 없다. 더구나 자영업 비중이 크고 영어가 서투른 비시민권자들은, 복잡한 유권자 등록과 투표에 참여할 시간과 여유가 없다.
둘째, 비시민권자의 투표 사례가 극히 적다. 트럼프 대통령이 2020년 ‘부정선거’를 주장한 직후 공화당 위주의 조지아 주정부가 조사한 결과, 투표자 820만명 가운데 비시민권자는 20명에 불과했다. 전체 유권자 비율의 0.0002%로 거의 무시해도 될 정도다. 보트라이더즈(VoteRiders)의 한인 김다해(DaHae Kim) 매니저는 “미국에서 유권자 사기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수준이다”라고 말한다.
셋째, 시민권 증명 서류를 갖추기도 쉽지 않다. 미국 시민 가운데 미국 여권을 가진 사람은 52%에 불과하다. 수십년전 출생 증명서를 지금도 있는 미국 시민도 많지 않고, 귀화와 결혼 등으로 이름이 바뀌어 시민권 증명에 쓸수 없는 사람도 많다.
결국 SAVE 법안의 의도는 뻔하다. ‘부정선거’를 핑계로 시민권 서류를 갖추기 어려운 이민자, 유색인종, 그리고 여성의 투표를 방해하겠다는 의도다. 김 매니저는 “기존 법체계만으로도 비시민권자의 투표는 충분히 걸러낼 수 있다. 그런데도 새로운 장벽이 계속 만들어진다. 존재하지 않는 부정선거를 막기 위해, 존재하는 유권자들을 밀어낸다”고 지적한다.
SAVE법은 투표함 앞에 선 사람이 돌아서게 만드는 법이다. 총칼보다 조용하고, 때로는 더 효과적인 유권자 탄압 법안이다. 근거없는 ‘부정선거’론 대신, 더 많은 한인과 이민자들의 미국 정치 참여를 응원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