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에 사는 작은딸 가족이 영국 친가를 다녀왔다. 2살짜리 아이가 약간 콧물을 흘렸지만 새해 초부터 비행기표를 사고 기다려온 여행이라 온가족이 가볍게 집을 나섰다. 아이가 데이 케어에서 픽업한 것 같은 바이러스가 영국에 머문 17일동안 딸네만 아니라 영국 시댁 모든 가족을 공격했다. 더러는 가볍게 더러는 강하게 피해를 봤다. 특히 안사돈은 고막이 파열해서 귀에서 피가 나왔다더니 쉽게 회복되지 않았고 다시 고막이 터진 바람에 어쩌면 청각을 잃을지도 모를 상황이 됐다. 손주들을 안아보려고 일년내내 기다렸던 대가가 너무 컸다.
돌아와 여독을 푸는 딸에게 사돈네의 근황을 물었다. 아직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서 고통을 받고 있다는 소식에 가슴이 철렁했다. 시아버지는 이제 회복기 같은데 시어머니의 상태가 걱정스럽고, 1살이 되어가는 시누이의 아이는 거의 회복했지만 시누이 부부는 힘겹게 버티고 있다고 한다. 나이든 시삼촌과 고모도 아직 흐느적거린다 했을 적에 나는 날씨를 탓하고 싶었다. 기록적인 높은 기온이었고 더구나 사돈네 집과 많은 공용시설에 중앙 에어 컨디션이 없으니 선풍기로 폭염을 견디느라 모두 허약한 상황이었다.
아이가 데려간 바이러스가 시작이었지만 생활 환경이 다르고 평소 정기적으로 의사를 보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라 면역력이 약했을 지도 모른다는 딸의 설명을 듣고 그래도 미국에 사는 사람들은 복 받은 사람들이라 싶다. 이곳에서는 어디서나 찬 바람 쾅쾅 쏟아내는 에어 컨디션 환경이 잘 되어 있고 매년 의사를 보며 신체상황을 체크하니 몸의 컨디션도 알고 필요한 약 복용도 하지 않는가.
갑자기 6살 손주가 궁금한 것이 있다며 물었다. “왜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늘 다투어요?” 내 표정을 보는 아이에게 선뜻 답을 못했다. 사돈네 부부는 항상 잔잔한 미소를 띄우고 목소리를 높이거나 별 다툼 없이 사근사근하게 대화한다. 평소에 나도 그들은 고요한 호수이며 예의 바르고 공손한 자세가 생활습관이 된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과 함께 지내던 아이가 앨라배마에 사는 우리 부부를 떠올리고 우리의 다투는 모습을 지적한 것이 내 가슴을 따끔하게 찔렀다.
사돈네와 우리 부부를 견준 아이에게 답을 주려고 사위에게 물었다. “자네 부모는 서로 뜻이 맞지 않으면 화내거나 크게 목소리 높여 다투지 않느냐?” 물었더니 사위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영국사람들은 감정을 감지하기 힘든 대화법을 안다고 했다. 그의 부모도 절묘한 대화의 전문가들이라 했다. 적당히 부드럽게 대화하면서 할 말 다 하고 주위에 표시 나지 않도록 은근슬쩍 다툼도 잘 한다며 피식 웃었다.
사실 다민족 다문화 가족인 우리 집안의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도 제각기 다. 남편과 나의 마찰은 노골적이다. 이지적인 남편과 감성적인 나의 성품은 처음부터 서로의 다름을 이해할 바탕이 약했다. 우리는 진지한 합의나 동의를 구하는 대화를 나눌 능력이 부족한채로 수십년을 위태롭게 살아왔다. 큰딸과 양키사위는 의견이 부합하지 않으면 마치 토론경시대회처럼 감정을 컨트롤 하고 자근자근 대화한다. 다툼이 아니라 논리적인 설계도를 그린다. 작은딸과 영국사위는 두 부모의 다른 점과 두 나라의 문화를 그대로 보여준다. 감정이 북받치면 딸의 목소리는 즉각 오르고 사위는 쿨 하게 대응한다. 좋은 사실은 어느 방식으로 의견다툼을 해도 승자나 패자가 없다는 점이다.
영국방문 중에 삐걱대며 사는 우리 부부의 맨 낯을 기억한 손주는 민감하고 분명히 자신의 뜻을 밝힐 줄 안다. 평소에는 할아버지를 “Grandpa”라 부르지만 작년부터 할아버지의 표정이 바뀌면 바로 GGG (Grumpy Grouch Grandpa)라 부른 아이의 재치는 심기가 불편한 할아버지를 웃게 했다. 그후 GGG 별칭은 손주들의 공용이 됐다.
어린 손주로부터 날벼락을 받았던 사돈네 가족들의 빠른 쾌차를 빌면서 가까운 사람과의 대화의 어려움을 인식한다. 솔직히 일본계 남편과 한국계 나는 가깝고도 먼 관계다. 예전에는 태평양 건너에서 한일갈등이 껄끄러우면 우리 집안도 껄끄러웠다. 역사적 잔재를 짊어진 이민 1세의 감정 대결로 도토리 키 재기 하듯 각자의 모국이 옳다고 우기며 티격태격하면 딸들은 그러려니 여겼다. 이제 나이 드니 어깨 힘이 빠져서 한일관계에 별로 반응하지 않지만 또 다른 변수, 정치 성향이 달라지면서 우리의 다툼은 여전히 계속되니 아이들에게 부끄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