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저마다 고유하고 특별한 굴곡을 가진 인생을 산다. 그럼에도 ‘평범한 삶이 행복하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오래전 나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도대체 평범한 삶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품고 카렐 차페크의 소설 <평범한 인생>(1934)을 집어 들었다. 이 소설을 철학 소설로 분류한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 채였다.
카렐 차페크(1890~1938)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태어나 제1차 세계대전 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독립한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그는 시대적인 불안과 증오에서 해방된 인간 존재 의미에 대해 성찰하는 작가이다. 한편, 그는 희곡
<평범한 인생>은 철도 공무원으로 산 주인공이 죽음을 앞두고 삶을 회상하는 이야기이다. 정원에 날아든 방울 새가 “너는 대체 누구지?” 라고 묻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주인공 ‘나’는 평범하고 성실하게 산 사람이다. 나무로 가구나 문방구 따위를 짜는 일을 하는 소목장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조용하고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고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가 바로 그만 두고 시를 쓴다. 그러다가 아버지로부터 경제적 자립을 하기 위해 철도 공무원이 된다. 어느 심성 좋은 역장의 딸을 만나 결혼하였고, 아내의 극진한 돌봄을 받는다. 주인공은 장인 덕분인지 몰라도 일찍 역장이 되었고 역장으로서 성실하게 리더십을 발휘한다. 얼마 후 전쟁을 겪으면서 체코인 동포들을 위해 역에서 발생하는 부대 이동 상황이나 보급 상태 등의 정보를 전달한다. 그리고 곧 전쟁은 끝난다.
이쯤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적는다. “나의 삶에서는 비일상적이고 극적인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중략) 이 얼마나 아름답고 평범하고 시시한 삶인가!” 나는 주인공의 의견에 동의가 되지 않았다. 그의 삶에서 평범한 구석이라고는 한 군데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나의 생각을 알아챈 듯이 이야기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끈다.
주인공은 평범하고 단일한 자아로 살아왔다고 생각했던 그의 인생에 여러 자아가 존재하는 것을 발견한다. 평범하고 행복한 사람, 출세를 위해 몸부림치는 억척이, 그리고 두려움 때문에 소극적이고 안전한 생활을 원하는 우울증 환자의 모습도 고백한다.
“평범한 자아는 다른 어떤 것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일을 했고, 억척스러운 자아는 그 일을 상품화하면서 한눈팔지 않고 이 일은 하고 저 일은 하지 말라는 지침을 정해 주었으며, 우울증 환자인 자아는 가장 괴로워하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자신을 파멸시키지 않았고 모든 일을 적당히 처리했다. 그처럼 세 개의 상이한 본성이었지만 서로 불화하지는 않았다. 말없이 타협했고, 아마도 서로를 배려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 밖에도 주인공은 자존심 센 겁쟁이, 낭만주의자, 시인, 용기 있는 사람 등내면에 숨어 있던 여러 자아를 마주한다. 카렐 차페크는 <평범한 인생>에서 회고록이라는 형식을 빌려, 마치 한 사람이 단 하나의 자아로만 살아온 것처럼 기록하는 것이 얼마나 큰 오류인지 보여준다. 주인공은 평범하게 살아왔다고 믿었지만 그 생각이 자기기만이었다는 진실에 직면한다.
인생이란 살아낸 가능성과 잠재된 가능성의 집합체이다. 한마디로 평범한 인생은 없다. 다시 말하면 특별한 인생도 없는 것이 아닐까. 차페크에게 인생은 살아낸 자아와 잠재된 자아 사이의 경계가 모호하다. 그 모호함을 인정하는 태도가 나에겐 정직하게 다가온다.
나는 이 소설을 꽤 여러 날 붙잡고 있었다. 글이 많아서가 아니라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었다. 그저 난해한 책으로 여기고 책장에 남겨두고 싶었지만 이해해 보려고 애쓴 시간이 아까워서 겨우 정리해 보았다. 차페크를 이해한 마지막 중요한 한 가지가 남아 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인생을 산다. 우리는 각각 다른 가능성을 산다는 뜻이다. 너는 내가 살 수도 있었던 다른 가능성이고, 그래서 내 삶인 줄만 알았는데 ‘우리’가 어우러진 삶이라고 차페크는 말한다. 이렇듯 광대한 관계 속에 있을 때 진정 평범한 인생이라고 강조한다. 비로소 주인공의 평범한 인생이 고유하고 신비롭게 보이는 지경에 이르러 참 다행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