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비행기에 오를 때마다 문득 밀려오는 생각에 울컥할 때가 많다. ‘앞으로 우리가 몇 번이나 더 만날 수 있을까?’ 하늘길로 두어 시간 거리, 제법 가까운 뉴욕에 살아도 큰마음을 먹어야 갈 수 있으니 드는 생각이다. 가정을 이루고 한창 일하는 아들도 바쁘고 우리도 생업에 매여 있으니 서로 얼굴 보는 것이 쉽지 않다.
지난 마더스데이에 큰아들 내외가 온다는 것을 말렸다. 임신 5개월 차인 며느리가 무리할 것 같아서 우리가 6월에 짬을 내겠다고 했다. 큰아들이 태어난 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녀석은 8월이면 아빠가 되고 나는 할머니가 된다. 임신 초기 아들을 바랐다는 아들과 며느리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저는 한 번도 태어날 아이가 딸이라는 생각을 못 해봤어요.” 요즘 세상에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을 선호했던 윗세대의 정서가 MZ세대인 아들의 마음속에도 남아 있는 듯해 신기했다.
아들이든 딸이든 다 좋은 나는 마냥 설렌다. 아들만 둘인 내가 딸을 키워보지 않아서 그럴까? 곧 세상에 나올 손녀는 누구를 닮았을까. 어떤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볼까. 어떤 성품으로 자랄까. 생각만 해도 마음이 환해진다. 그래서 손녀가 쓸 아기용품을 아들 내외와 함께 골라 주고 싶어 아들네 방문을 자처했던 것이다. “침대와 유모차, 카시트와 아기 바구니 등 우리 손녀의 물건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선물하려고 해. 아기용품 파는 곳에 함께 가서 튼튼하고 좋은 것으로 골라보자.”
큰아들을 임신했던 젊은 날 시어머님이 임신복을 사주셨다. 회색의 펑퍼짐한 임신복을 입고 날마다 출근했던 기억이 아슴아슴 떠오르던 5월 어느 날이었다. 서둘러 일정 금액을 아들에게 송금하고 며느리에게 전화했다. “내가 네 남편을 임신했을 때 네 할머니께서 예쁜 임신복 한 벌을 사주셨어. 그것이 당시 내 출근복이자 외출복이었는데 지금도 아주 선명하게 떠올라. 마르고 닳도록 입었던 한 벌의 임신복이 애틋한 추억으로 남아 있어. 이제 내가 그 대를 이어서 며느리인 네게 그 사랑을 건네주고 싶어. 예쁜 임신복 몇 벌 사 입어라.” “어머니, 정말 감동이에요.”
부모 품에서 부족함 없이 자란 아이들이 이제 부모가 된다고 생각하니 문득 걱정이 앞선다. 산고의 고통을 이겨내고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스멀스멀 걱정이 올라오지만 이 또한 기우일지 모른다. 설핏 약해 보여도 부모의 등쌀에 밀려 이민길에 올라 낯선 환경을 견디며 제 삶의 자리를 찾아간 이들이다. 육아용품 가게에서 카시트와 유모차를 꼼꼼히 살피는 모습을 보니 안도감이 스쳤다. 선물로 주신 귀한 생명을 보물 다루듯 소중하게 키워낼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큰아들이 결혼한 지 3년이 다 되었지만 아직도 나는 ‘시어머니’라는 자리가 서툴다. 내 며느리도 마찬가지일 테다. 하지만 8월에 태어날 손녀가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를 더욱 가깝고 살갑게 이어주는 작은 다리가 되어 줄 것이다. 우리를 뉴욕행 비행기에 더 자주 오르게 할 테니까.
맨해튼 거리에 쏟아지는 찬란한 햇살처럼 우리에게 빛으로 찾아올 손녀. 나는 지금 엄마로 살아온 세월을 지나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릴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아들의 엄마로 살아온 시간만큼이나 설레는 이름. 할머니가 되는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