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일과를 모두 마치고 나면, 포근한 담요를 몸에 두른 채 소파에 편안히 몸을 맡긴다. 방구석에서 세계여행 하기를 좋아하는데, 그 날은 유독 ‘한글을 쓰는 나라’라는 썸네일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 즐겨 보던 여행 유튜버의 영상이라 망설임 없이 재생 버튼을 눌렀다. 영상에서는 인도네시아의 소수민족인 찌아찌아족의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그저 유행하는 K-culture를 어설프게 흉내 낸 마을이겠거니 여겼던 나의 생각은 큰 오산이었다. 인도네시아는 17,000개가 넘는 섬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나라로, 수많은 소수 민족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중 술라웨시섬에 위치한 바우바우시에 사는 찌아찌아족을 찾아간 여정이었다. 화면 속 마을에는 다소 낯설고도 신기한 한글 간판과 표지판들이 간혹 보였다.
2008년, 한국에서 한글을 공부할 기회를 얻은 ‘아비딘’이라는 사람은 한글이 자신들의 언어를 기록하는 데 가장 적합한 문자라고 느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한글학회와 언어학자들과의 협력이 시작되었고, 찌아찌아어를 한글로 표기하기 위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찌아찌아족의 언어는 수백, 수천 년 동안 말로만 전해져 온 구술 언어였다. 고유 문자가 없었던 탓에 공식 행정 언어인 인도네시아어에 밀려 점차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찌아찌아어는 자음과 모음 체계가 단순하고 받침과 성조가 거의 없어 한글로 표현하기에 매우 적합했다. 알파벳이나 다른 문자로는 발음을 온전히 담아내기 어려웠지만, 한글은 자음과 모음의 조합만으로 모든 소리를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한글은 기본 24자(자음 14자, 모음 10자)로 1만 1,000개가 넘는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영어 알파벳으로는 수백 개, 중국어 한자로는 약 400여 개, 일본어로는 300여 개의 소리 표현이 가능하다고 하니, 비교해 보면 그 체계의 과학성과 효율성이 얼마나 뛰어난 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더불어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떠 만들어진 문자라는 점에서 배우기 쉽고 읽기 또한 수월하다.
이러한 문자를 전파하기까지 수많은 어려움과 많은 이들의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인도네시아 정부와 바우바우시는 소수 민족의 언어를 지키려 했고, 한국 역시 한글이 다른 민족의 언어 보존이라는 의미 있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2009년부터 일부 초등학교에서 한글을 활용한 찌아찌아어 수업이 공식적으로 시작되었고, 16년이 지난 지금까지 정규 과정으로 확대되어 이어지고 있다.
한글이 대한민국을 넘어, 멀리 떨어진 인도네시아의 작은 섬에서 말로만 전해지던 언어를 기록하고 체계화하는 데 쓰이고 있다니 참으로 감동적인 일이다. 이는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신 이유와도 깊이 맞닿아 있다. 백성들이 어려운 한자 때문에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겨, 누구나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도록 만든 글자였기 때문이다. 문맹률을 낮추고 삶의 목소리를 글로 옮길 수 있게 해 준 이 자랑스러운 문자가 이제는 국경을 넘어 또 다른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계승하고 있다.
영상을 보는 내내 ‘대단하다’, ‘신기하다’는 말을 연발했다. 자연스레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 업적에 깊은 존경심이 우러나왔다. 더불어 일제강점기라는 가혹한 시대 속에서도 목숨을 걸고 나라와 우리말을 지켜 내신 선조들의 애국정신 또한 떠올랐다.
오늘날 그래미 시상식에서는 한국 가수가 오프닝 무대를 장식하고, 외국 아이들은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노래 ‘골든’의 한국어 가사 ‘영원히 깨질 수 없는’을 정확한 발음으로 따라 부른다. 매장 진열대마다 한글이 선명하게 적힌 K-Beauty 제품들이 놓여 있고, K-food의 인기로 한국의 맛은 세계 곳곳에 스며들고 있다. 자막 보기를 꺼리던 이들이 이제는 K-Drama를 따라 한국어를 익히고, 열성적으로 배워가는 시대다.
한글은 이제 세계를 향해 날아가고 있다. 이 흐름 속에서 한국인으로서 더 큰 자부심을 가지고, 한글을 올바르고 아름답게 전파해 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백범 김구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문화의 힘’을 오늘날 우리는 작지만 강한 나라, 대한민국에서 기적처럼 지켜 내고 키워 왔다. 우리의 유일무이한 한글과 함께, 영원히 깨질 수 없는 자랑스러운 문화의 힘을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