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아들 수영아 네 편지들을 받고 편지가 늦어 미안하다. 건강하냐. 그리고 더 그곳에 재미를 붙였는지. 필라델피아로 가게 되든지 거기 있게 되든지 이 년 혹은 삼 년 후의 너의 목표가 무엇인지 궁금할 때가 있다. 그냥 벌어먹고 산다면 그리고 진취성이 없다면 무엇 하러 거기에 있어야 하겠니. (1976년 3월 19일)
미국에 있을 궁리라면 더 열심히 살라는 요지다. “뭣하러 거기에서…”로 시작되는,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성화로 운을 뗀 이 편지는 자동차 사지 마라, 운전 서툰 사람 차 절대로 타지 마라, 될 수 있는 대로 외식하지 말고 서울 올 수 있는 노자라도 모으라는 잔소리로 이어진다.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를 펴보는 피 박사. 아버지의 편지를 읽을 때마다 지금도 고인의 순수한 마음을 느낀다.
12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된 피천득 수필 선집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에 실려 처음 공개된 피천득의 아들을 향한 편지다. 현재 476권까지 나온 이 전집에 한국 수필이 수록된 건 처음이다. 지난 29일 만난 편지의 수신인 피수영(83) 전 하나로 의료재단 고문의 거실 책상에 이 책이 빛바랜 영한사전과 함께 놓여있었다. “미국에 머무르면서는 일주일에 한번씩 국제전화를 걸어 안부를 여쭈었다. 어렸을 때부터 수십번, 수백번 읽은 아버지의 글이지만 곁에 두길 즐긴다. 여전히 아버지의 글을 읽으면 순수하다는 생각이 든다.”
피 박사는 수필가 피천득의 둘째 아들로 한국 최초로 신생아학을 개척해 미숙아 1만명 이상을 살린 명의다. 여든 살 나이로 은퇴하고 지난 겨울 서울 생활을 정리하면서 노후에 살기 좋다는 지인 추천을 받아 조지아주 커밍에 정착했다. 군 제대 직후인 1975년 선진 의료를 배우러 처음 미국에 건너온 지 50년만에 두번째 이민이다. 30년의 서울 생활을 접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자식들이다. 아들 가까이서 나이들고 싶다는 아내 소원에 못 이기는 척 져줬다. 부부는 두 아들을 뒀는데 모두 법조인이다. 첫째 아들 피윤범(대니얼 피)씨는 현재 뉴햄프셔 주립대학 법학과 교수로, 피윤성(데이비드 피)씨는 캘리포니아 중부지법 연방검사로 일하고 있다.
2025년 가을 조지아주에서 열린 서울대 동문 야유회에 참석한 피수영 박사 부부. 그는 1967년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 부속병원에서 소아과 레지던트를 마쳤다.
책의 말미 실린 7편의 편지는 1970~1980년대 피 박사가 미네소타주에서 신생아 전문의로 일하던 시절 아버지와 주고받은 것이다. 피천득은 장남 세영, 차남 수영, 막내딸 서영까지 2남 1녀를 뒀는데 모두 미국으로 건너가 살았다. 1980년 9월 보낸 편지에는 “아들딸 가까이 살고 손주들 재미 보는 사람들이 부럽다”며 “보통으로 기를 것을” 하는 후회도 쓰여있다. 피 박사는 미국에서 배운 의료기술을 바탕으로 서울아산병원에 한국 첫 신생아 집중치료팀을 만들었다. 미숙아 치료에는 의사만큼이나 간호사 역할이 중요한데, 미국에서 같이 일했던 간호사들을 3개월간 아산병원에 머무르게 하면서 한국 간호사 50명을 교육시켰다.
“그때만 해도 칠삭둥이라면 집안 어른들이 그저 죽게 냅뒀다. 월급이 적으니 병원비를 부담스러워 하는 부모도 많았다. 한 할아버지가 천그램 될까 말까 한 미숙아의 인공호흡기를 떼버리던 게 아직도 생각난다. 백내장에 거동 불편한 나도 치료를 못 받는데 핏덩이를 먼저 살리냐는 거였다.” 그는 이때 경험을 잊지 않고 대한신생아학회 명예회장으로 연예인 고액 기부금을 적극 유치하면서 아산병원에 저소득 가정 의료비 지원 프로그램을 정착시켰다.
그는 피천득 작품이 꾸준히 재출간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출판사 말론 내면 팔리는 작가라더라”고 웃어넘기면서도 “한때 전 국민이 교과서에서 피천득 수필을 읽으며 자랐다. 요새야 책 안 읽는 시대라지만 ‘인연’의 마지막 세 문장과 같이 마음을 울리는 글은 보고도 다시 보고싶은 아름다움”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버지 작품을 모두 관리하고 있는데, 피천득기념사업회 이름으로 잠실 롯데월드에 기념관을 조성하고 서초구 반포천변에 피천득 산책로를 만든 것도 그다. “일평생 ‘피천득 차남’을 찾는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이 참 많았다. 감사한 일이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아버지의 글은 시 ‘이 순간’이다.
이 순간 내가
별들을 쳐다본다는 것은
그 얼마나 화려한 사실인가
…
그들이 나를 잊고
내 기억 속에서 그들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즐거운 사실인가
…
장채원 기자 jang.chaewon@koreadail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