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이민단속이 조지아 현대차 공장 한인 대량 구금사태, 미국 시민권자 총격 사태까지 확산되면서, 한인 등 이민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시민권자 및 합법 체류 여부에 상관없이 불안해하는 한인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최근 미국 내 이민 정책의 강화와 혐오 범죄의 급증은 단순한 사회적 갈등을 넘어 특정 공동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공공보건의 위기로 번지고 있다. 특히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아태계 태평양 제도인(Pacific Islander) 공동체가 겪는 고통은 수치로 증명될 만큼 심각한 수준이다.
‘Stop AAPI Hate’와 시카고 대학교 NORC가 공동 실시한 최신 조사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태평양 제도인 성인의 47%가 인종, 민족, 국적을 이유로 괴롭힘이나 차별, 폭력을 경험했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미래 세대인 청년층의 피해다. 18~29세 청년층의 경우 무려 62%가 혐오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들은 온라인 공간과 일터, 거리 등 일상의 모든 곳에서 인종차별적 비속어(41%)와 제도적 차별(27%)에 노출되어 있다고 답했다.
보건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심리적 타격’ 그 이상으로 규정한다. 혐오를 경험한 응답자의 58%가 “정신적 또는 신체적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답했다. 중간 이상의 불안·우울 증상을 보이는 비율은 41%로, 경험하지 않은 이들(29%)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정신적 불안감은 신체적 증상 등으로 이어지며, 만성 스트레스, 수면 장애, 사회적 고립 등은 이들의 전반적인 면역 체계와 삶의 질을 악화시킬수 있다.
상황이 이토록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아태계 이민자들이 적절한 도움을 받는 비율은 턱없이 낮다. 피해자의 61%는 경찰이나 관계 기관에 신고하지 않았으며, 4명 중 1명은 가족이나 친구에게조차 피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아태계 이민자들이 혐오범죄를 신고하지 않는 데는 몇 가지 구조적인 원인이 존재한다. 먼저 제도적 불신이다. “신고해도 변하는 것이 없다”는 무력감과 “오히려 구금이나 추방의 타겟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발목을 잡는다. 게다가 미국식 의료 시스템에 대한 낯설음과 정신 건강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치료를 방해한다. 또한 언어장벽도 문제다. 도움을 요청한 이들 중 72%가 “필요한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답할 정도로 한인들의 문화적 특수성을 고려한 서비스가 부족한 실정이다.
아태계 태평양 제도인들이 겪는 오늘의 고통은 과거 식민 지배와 군사화, 핵실험 등 역사적 상처와도 연결돼 있다. 특히 최근 특정 국가(통가, 피지, 투발루 등)를 겨냥한 여행 제한 조치는 이러한 소외감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은 감지된다. 조사 대상자의 67%가 인종차별에 맞서는 시민 활동에 참여했으며, 2025년에는 타 인종 간의 연대를 통해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아태계 이민사회의 건강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데이터 수집과 문화적으로 적합한 상담 서비스 확대가 시급하다. 혐오는 개인의 마음을 병들게 할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경제적 안정을 해치고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이들의 침묵을 깨고 건강권을 회복하는 일은 이제 한인 이민사회, 아니 미국 사회 전체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