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화면에 ‘애틀랜타 총영사관’ ‘워싱턴DC 주미대사관’ ‘ICE’ 전화번호가 떠오른다. 전화기 너머 남자는 ‘아무개 영사’ ‘아무개 요원’이라며 근엄하고 무서운 목소리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한국에서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당신의 한국 은행계좌가 돈세탁 범죄에 이용되고 있으니 검사와 통화해보라.” “당신 가족이 ICE에 체포됐다는 통보를 받았다”는 식이다. 겁에 질려 자세히 물어보면 ‘아무개 검사’에게 전화가 넘어가 “지금 당장 여권이 취소되고 입국 즉시 체포, 추방될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결국 이들은 민감한 개인정보를 물어보고, “수배를 풀어야 한다”며 수만달러의 돈을 송금하라고 한다. 놀란 한인들이 돈을 송금한 후, 사기인줄 알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애틀랜타를 비롯해 미주 전역 한인들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사칭 사기’다.
미국 전역에서 한인 이민자를 겨냥한 사기가 진화하고 있다. 단순히 은행, 신용카드 회사 이름을 도용하는 수준을 넘어, 경찰관, 검사, 판사를 통째로 사칭하는 단계까지 왔다. 전 연방거래위원회(FTC) 소비자보호국 소속 변호사였던 모니카 바카 변호사는 “심지어 ICE(이민세관단속국)을 사칭하는 사기 전화도 많다”고 지적한다. FTC의 케이티 다판 변호사는 “보석금 명목의 송금 요구, 위조된 석방 명령서, 반복되는 소액 결제 등이 사기꾼들의 수법”이라고 설명한다.
사기 범죄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심리다. “당신에게 수배 영장이 떨어졌다” 또는 “당신 가족이 ICE에 체포되어 보석 석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추방된다”고 위협한다. 정보는 단절되고 불안은 극대화된다. 이성적 판단이 흐려지는 순간, 사기범은 ‘해결사’로 등장한다. “지금 수배를 풀어야 한다” “반드시 풀려난다”는 식의 보장, “지금 보석금을 당장 결제해야 한다”는 압박이 이어진다. 피해자는 선택지를 잃는다.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등 SNS도 사기꾼의 새로운 사냥터다. 검색 상단의 유료 광고, 인스타그램의 추천 게시물. 겉으로는 전문적이고 신뢰할 만해 보인다. 하지만 클릭 한 번이 수천 달러의 손실로 이어진다. 디지털 시대의 신뢰는 쉽게 위조된다. 최근 애틀랜타에서도 한국식 양념치킨을 온라인 주문하려다 1천달러를 사기 결제당한 사례가 보고됐다.
전문가들은 예방만이 답이라고 말한다. 만약의 사례에 신뢰할만한 가족 또는 변호사 연락처를 찾아두고, 가족 간 크레딧카드 및 은행계좌 접근 권한 및 메시지를 공유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전국 이민법센터, 법률지원정의센터 등에서 정보를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피해를 입었다면 즉각 대응해야 한다. 은행과 송금업체에 연락해 거래를 취소하고, 신고가 부담스러우면 신뢰할 변호사 또는 단체를 통해 대리 신고를 요청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돈을 되찾을 가능성은 줄어든다. 하지만 많은 피해자가 신고조차 하지 못한다. 이민 체류 신분에 대한 두려움, 언어 장벽,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침묵을 강요한다.
이 사기의 진짜 문제는 범죄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적 취약성이다. 트럼프 정권의 이민 단속 강화는 불안을 키우고,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은 사기꾼들이 ‘타겟’을 찾아내는 수단이 된다. 언어장벽으로 인한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는 범죄의 온상이 된다. 사기범은 이 틈새를 파고든다.
결국 이 문제는 개인의 경각심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한국과 미국 정부 차원에서 이민자 커뮤니티에 대한 체계적 지원, 접근 가능한 법률 정보, 신뢰할 수 있는 공적 시스템이 필요하다. 불안을 파는 사람들이 아니라, 불안을 덜어주는 구조가 먼저 작동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