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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오피니언 애틀랜타 오피니언

[에릭박 수필] 아무도 없는 날

에릭 박 / 부동산 전문인

04/29/26
in 애틀랜타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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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 하나가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 분명 주변에는 사람들이 있다. 친구도 있고, 사회 속에서 관계도 이어가며, 가끔은 안부를 묻는 연락도 오간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나는 혼자 먼 곳에 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사람들 사이에 있지만, 끝내 닿지 않는 거리. 보이지 않는 벽 하나가 세상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 감정은 요란하지 않다. 오히려 너무 조용해서 더 깊이 스며든다.

젊은 날의 외로움은 누구나 한 번쯤 거쳐 가는 성장통이었다. 그때의 외로움은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갈망에서 비롯된, 아프지만 선명한 동력이었다. 사람들과 부딪히고 관계를 쌓으며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분투하게 만드는 에너지가 그 결핍 속에 있었다. 그래서 청춘의 외로움은 고통스러울지언정 정체되어 있지 않았다. 그것은 늘 밖을 향해 열려 있었고, 타인에게 닿기 위해 몸부림치는 뜨거운 생명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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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은 각자의 삶의 궤도에 묶여 점점 멀어진다. 아이들은 제 몫의 삶을 찾아 독립하고, 한때 매일 마주하던 친구들은 가족과 일상에 무게에 눌려 특별한 일에만 떠오르는 이름이 된다. 휴대전화 연락처는 여전히 가득하지만, 마음이 괴로울 때 감정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아마 한 명도 떠올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전화를 걸 번호도 드물다. 괜한 방해가 되지나 않을까?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쑥스러워 망설이다가 전화를 놓게 된다. 이런 심리적 거리감은 외로움을 더욱 깊고 고요하게 만든다.

중년의 외로움이 유독 시리게 다가오는 이유는 “함께 있어도 외롭다”는 역설 때문이다. 평생을 약속한 배우자와 한 집에 살면서도 대화는 줄어들고, 식탁 앞에 앉아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침묵을 지키는 순간이 늘어난다. 오랜 시간을 함께했기에 서로를 가장 잘 안다고 믿었지만, 어느 순간 그 침묵이 편안함이 아닌 서늘한 단절의 신호로 느껴질 때가 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마음을 온전히 기대지 못한다는 자각은 중년이 감내해야 할 가장 무거운 고독의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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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관계를 정리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것은 선택이라기보다 필연에 가깝다.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고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려는 삶의 지혜이기도 하지만, 정작 남은 관계가 손에 꼽을 정도라는 사실을 확인할 때면 씁쓸함이 밀려온다. 한때 세상을 다 얻을 것처럼 북적이던 인연의 파도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 홀로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일은 그리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오랫동안 사람들 속에 있었지만, 진심으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상대가 한 사람도 없을 수 있다는 자명한 현실을 결국 받아들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외로움은 단순한 결핍이나 불행의 증거가 아니다. 어떤 고독은 우리를 이전보다 훨씬 섬세하게 만든다. 타인의 부재와 관계의 소원함을 통해, 내가 진정으로 갈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 삶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 비로소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간절한 날,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순한 음성이 아니라 진심 어린 마음의 접촉이다. “잘 지내? ”짧은 안부 한마디“에 코끝이 찡해질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여전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근본적인 연결을 갈망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 갈망은 결코 나약함이 아니라, 우리가 여전히 뜨겁게 살아 있다는 가장 강력한 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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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외로움을 억지로 없애려 애쓸 필요는 없다. 외로움은 지워내야 할 오점이 아니라, 조용히 품어 주어야 할 생의 한 부분이다. 괜찮은 척 자신을 속일수록 고독은 더 깊은 곳에서 독이 된다. 대신 아주 작은 연결들이 주는 온기에 집중해야 한다. 오래된 인연에게 아무 이유 없이 안부를 묻는 용기, 산책길에서 마주치는 타인에게 건네는 가벼운 눈인사, 홀로 베이커리에 앉아 타인의 일상을 관조하며 느끼는 동질감. 이런 사소한 순간들이 외로움을 완전히 소멸시키지는 못해도, 마음의 무게를 지탱할 힘을 준다.

중년의 외로움은 삶이 깊어졌다는 신호다. 젊음의 활기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관계의 소중함과 소통의 진실함이 이제야 또렷하게 보이는 것이다. 소유나 성공보다 한 사람과의 진심 어린 대화가 더 오래 남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시기, 외로움은 삶의 빈칸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 비추는 거울이 된다.

오늘 유독 마음이 시리다면 그 감정을 억지로 가두지 않아도 된다. 괜찮지 않은 상태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도 삶을 사랑하는 방식 중 하나다. 그 쓸쓸한 시간을 묵묵히 통과하며 우리는 조금 더 깊어지고 단단해진다. 자신을 다그치지 않고 외로움을 조용히 품는 일, 그것이 결국 삶과 사람을 더 깊게 이해하는 중년의 가장 아름다운 태도일 것이다. 그 태도는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아픔과 외로움까지도 온전히 품어내며, 삶의 무게를 고요히 견디는 평안의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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