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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오피니언 애틀랜타 오피니언

[김건흡의 살며 생각하며] 걷기, 그것이 주는 행복

김건흡 / MDC사랑복지센터 회원

05/06/26
in 애틀랜타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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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자동차를 보자 첫눈에 반해 그것과 결혼을 했다. 그래서 전원의 세계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다.”

키이츠의 이 말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욱 실감으로 다가온다. 특히 미국에서 살아보니 자동차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차가 없다는 것은 현대 생활에서 적지 않은 불편을 의미한다. 그런데 나는 차가 없다. 어쩔 수 없이 두 발로 걸어야 한다. 다행히 아직 내게는 건강한 두 다리가 있다. 처음에는 단지 차가 없어서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걷기는 내 삶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걷기는 불편함이 아니라 활력이 되었고, 사색의 시간이 되었으며,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조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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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를 걷다 보면 생각이 깊어진다. 바람의 결을 느끼고, 나무의 흔들림을 바라보며,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걸으면서 나는 비로소 삶을 천천히 바라보게 되었다. 서두르지 않고, 놓치지 않고, 내 삶을 내 속도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다비드 르 브르통은 말했다. “걷는다는 것은 세계를 온전히 경험하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 우리는 너무 빠르게 살아간다.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느라 길 자체를 잊어버린다. 그러나 걷기는 다르다. 걷는 데에는 오직 시간만이 존재한다. 걷는 사람은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살아낸다. 그래서 걷기는 시간의 고고학이며, 삶의 가장 깊은 맛을 음미하는 행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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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는 모든 감각을 깨우는 일이다. 눈으로 풍경을 보고, 귀로 바람과 새소리를 듣고, 피부로 햇살과 공기를 느낀다. 계절 따라 열리는 산딸기, 머루, 오디, 밤의 맛을 아는 사람에게는 미각까지도 함께 깨어난다. 걷기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전신으로 세계를 경험하는 일이다. 또한 걷기는 가장 완전한 운동이다. 발의 작은 근육부터 종아리, 허리, 어깨, 목까지 온몸이 함께 움직인다. 특별한 장비도 필요 없고, 비용도 들지 않는다. 그저 두 다리만 있으면 된다.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위대한 운동이 바로 걷기다.

보행은 참으로 자유로운 행위다.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오직 내 힘으로 가는 길이다. 흥이 나면 휘파람을 불 수 있고,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는 잠시 멈출 수도 있다. 걸어온 길을 돌아볼 수도 있고,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을 가늠해볼 수도 있다. 자동차 안에서는 결코 누릴 수 없는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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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걷기가 언제나 가볍고 쉬운 일만은 아니다. 오래 걷다 보면 발바닥은 화끈거리고 종아리는 뭉치며 관절도 피로를 느낀다. 그러나 걷고 난 뒤 찾아오는 묘한 충만감이 있다. 몸은 피곤한데 마음은 맑아지고, 설명하기 어려운 평안과 기쁨이 밀려온다. 그 아늑한 만족감은 오직 걸어본 사람만이 아는 선물이다. 걷기의 진정한 기쁨은 혼자 걸을 때 더 깊어진다. 혼자 걸으며 세계의 침묵을 듣게 된다. 바람이 대기를 흔드는 소리, 풀과 나뭇잎이 화답하는 서걱임,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와 발자국 소리. 자연은 말하기보다 듣는 법을 가르쳐준다. 혼자 걷는 시간은 결국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 된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우리를 앉게 만든다. 자동차가 생기고, 소파가 들어오고, 컴퓨터와 휴대폰이 우리의 손을 붙잡으면서 우리는 점점 더 오래 앉아 있게 되었다. 앉아 있는 삶은 편안하다. 그러나 그 편안함은 때때로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사람은 걸을수록 건강해진다. 걷기는 다리의 근육을 지켜주고, 혈액을 온몸에 순환시키며, 몸의 균형을 유지하게 한다. 무엇보다 관절에 큰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오래 지속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운동이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걷기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다리의 근육은 점점 줄어들고, 움직이지 않으면 더 빨리 약해진다. 노년의 가장 서글픈 모습은 정신은 또렷한데 몸이 따라주지 않아 누워만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갈 수 없고,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움직일 수 없는 삶은 참으로 답답하다. 그래서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노년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다. 내 힘으로 움직이고, 내 의지로 길을 선택하며, 스스로 삶을 살아가는 힘이다.

프랑스의 생물학자 이브 파칼레는 평생 걸으며 세계를 여행했고, 이렇게 말했다. “걷기, 그 속에는 인생이 들어 있고, 깨달음이 들어 있으며, 신과 조우할 수 있는 기회가 들어 있다.” 또 그는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의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를 빌려 이렇게 말했다. “나는 걷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이 말에 깊이 공감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다. 그러나 걸을 수 있는 시간만큼은 온전히 우리의 것이다. 걷는 동안 우리는 살아 있음을 가장 분명하게 느낀다. 숨을 쉬고, 바람을 맞고, 하늘을 바라보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 그 단순한 움직임 속에 삶의 본질이 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아니다. 얼마나 멀리 가느냐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이 길을 얼마나 충실하게 걷고 있는가이다. 길의 끝보다 더 소중한 것은, 그 길 위에서 내가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을 발견했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걷는다.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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