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에서 최근 한국 방문에 나서는 교민들이 부쩍 늘고 있다. 오랫동안 억눌렸던 향수, 은퇴 기를 맞은 베이비부머 세대의 증가, 달러 강세로 인한 경제적 부담 감소가 한꺼번에 맞물리면서 한국행 비행기 예약은 몇 년 전보다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한다. 특히 10년, 20년 만에 처음으로 고국 땅을 밟는 장기 거주 교민들이 많아 ‘강산이 바뀐’ 후의 방문이라는 점이 이채롭다. 애틀랜타 국제선 터미널은 백발의 노부모를 만나러 가는 이들, 오랜 친구와의 해후를 꿈꾸는 이들, 그리고 오랜 이민 생활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고국을 찾는 이들로 날마다 분주하다. 지금 아니면 방문이 어렵다는 절박함, 그리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마음이 짐가방을 꾸리게 만든다.
가장 큰 방문 동기는 역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다. 둘루스에 20년 넘게 살아온 지인은 15년 만에 어머니의 건강 악화 소식을 듣고서야 비행기 표를 끊었다. “표를 예약하면서 손이 떨렸다”는 그는 공항에 내리는 순간, 어머니의 깊어진 주름과 훌쩍 자란 동생의 아이들을 보며 비로소 15년이라는 세월의 무게를 온몸으로 실감했다고 했다. 부모와 형제의 경조사, 홀로 남겨진 노부모의 건강 문제는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방문을 결심하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그리고 달러 강세로 한국 여행의 경제적 부담이 크게 줄어든 것까지 더해지면서 고국행을 결심하는 교민들의 발걸음이 더욱 가벼워졌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한국의 변화는 교민들을 놀라게 한다.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초고속 행정 서비스, 세련된 키오스크 주문 시스템까지, 애틀랜타 생활에 익숙한 교민들에게 서울의 편리함과 도시적 활기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지하철 하나로 도시 어디든 갈 수 있고, 세계 최고 수준의 첨단 의료와 풍성한 문화 시설은 드넓은 미국 교외의 한적한 생활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의 설렘 뒤로 서서히 낯선 불편함이 스며든다. 오랜 친구들과의 반가운 만남도 이내 소유하고 있는 집, 자녀의 직장과 학력, 보유한 차종 등, 비교와 평가의 대화로 흘러가기 일쑤다. 이는 개인의 예민함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체면 문화와 비교 문화의 산물이다. 지하철 안에서 유행하는 비슷한 옷차림, 남들과 달라 보이는 것을 불편해하는 분위기, 사회가 암묵적으로 정해놓은 “평균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는 모습 속에서 교민들은 점점 마음이 무거워진다. 애틀랜타의 넓은 마당에서 자기만의 속도대로 살아온 이들에게, 한국 특유의 은근한 상호 검열과 타인의 시선은 숨이 막히는 압박으로 다가온다. 누구도 대놓고 말하지 않지만 모두가 느끼는 그 보이지 않는 잣대가 교민들을 서서히 지치게 만든다.
경조사 문화도 만만치 않은 심적 부담이다. 친구 자녀 결혼식, 친척 상가까지 빠짐없이 챙겨야 하는 ‘정’과 ‘의리’의 의무는 미국의 단순한 사교 문화에 익숙한 교민들에게 상당한 에너지 소모다. 오랜 공백 끝에 돌아온 탓에 거절하기도 쉽지 않고, 막상 참석해도 어색함과 피로가 쌓인다. 진심으로 축하하고 위로해야 할 자리가 어느 순간 의무처럼 느껴지기 시작할 때, 교민들은 고국 생활의 팍팍함을 몸으로 절감한다. 빽빽하게 채워진 인간관계의 일정 속에서 정작 자신을 위한 편안한 시간은 갖지 못하는 경우가 되면서 공허한 느낌마저 갖게 된다.
한 달여의 체류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지인은 조용한 안도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건강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미세먼지와 황사까지 뒤섞인 한국의 탁한 공기와 달리, 애틀랜타는 오염 물질의 절대적 밀도 자체가 낮아 어디서든 청정한 느낌을 주는 자연의 맑은 공기는 몸의 건강에도, 마음의 여유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침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맑은 공기만큼이나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이 바로 정신적 자유였다. 오래된 티셔츠 차림으로 마트에 가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이웃이 어떤 외제차를 타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삶. 소박하게 살아도 누구에게도 평가받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속도와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곳. 고국 방문을 통해 그는 비로소 그 “느슨한 고독과 자유”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지를 새삼 깨닫았다고 했다.
결국 고국 방문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두 세계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조용한 여정이다. 눈부시게 발전한 한국과 자유로운 미국 사이에서, 자신이 어디에 더 가까운 사람인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이다. 빠르게 변해 버린 고국과 자신이 오랫동안 살아온 미국 사이의 간격을 몸으로 느끼며,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한 채 다시 한국을 찾고, 또다시 미국으로 돌아온다. 화려한 불빛의 서울도 좋지만, 남의 시선에 구속받지 않고 온전히 “나 자신”으로 살 수 있는 미국의 내 집이야말로 진정한 평안의 자리라는 깊은 울림을 가슴에 품은 채. 애틀랜타 국제공항이 오늘도 분주한 이유는 그 질문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