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년의 역사를 펼쳐보면, 인간은 문명을 만들고 시를 쓰고 별을 관측하면서도 끊임없이 서로를 죽여 왔다. 전쟁은 인간의 역사에서 예외가 아니라 오히려 일상이었다. 평화는 짧았고, 전쟁은 길었다. 총과 칼의 모양은 바뀌었지만, 증오와 탐욕, 두려움과 오만은 시대를 건너며 되풀이되었다. 전쟁은 인간이 만든 가장 거대한 비극이다.
독일의 한 소도시. 고등학교 교실에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소식이 전해졌을 때 열아홉 살 소년 파울 보이머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선생님의 뜨거운 연설은 소년들의 피를 끓게 만들었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야말로 가장 숭고한 영광이라 믿었다. 교실은 어느새 병영이 되었고, 책을 들던 손은 총을 잡았다. 그러나 전쟁터는 그들이 상상한 영웅담의 무대가 아니었다.
어느 날 파울은 처음으로 프랑스 병사를 죽였다. 살기 위해 찌른 칼이었다. 숨이 끊어져 가는 적병의 가슴에서 나온 것은 권총도, 비밀문서도 아니었다. 낡은 가족사진 한 장이었다. 사진 속에는 아내가 있었고 아이가 있었다. 그 순간 파울은 깨달았다. 자신이 죽인 것은 적군이 아니라 한 인간이었다. 그 깨달음은 총탄보다 깊게 영혼을 꿰뚫었다. 서부전선은 인간이 만든 거대한 지옥이었다. 포탄 구덩이에 몸을 웅크린 채 흙탕물을 마시고, 시체 곁에서 잠들고,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포탄 소리에 귀를 막으며 살아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포성이 잠시 멈췄다. 먼 곳에서 하모니카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잿빛 하늘 아래 나비 한 마리가 날아든 것이다. 파울은 무심코 손을 내밀었다. 전쟁 이전의 세계가 아직 어딘가 남아 있다는 듯, 꽃을 찾는 나비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손끝이 닿기 직전, 적의 저격수가 쏜 총알이 그의 가슴을 꿰뚫었다. 나비가 꽃잎에 내려앉듯 그의 손은 천천히 흙바닥 위로 떨어졌다. 전쟁이 끝나기 불과 한 달 전이었다. 그날 전선사령부가 본국으로 보낸 보고서는 단 한 줄이었다.
“서부전선 이상 없음.”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는 자전적 소설 <서부전선 이상 없다>를 통해 바로 그 거대한 기만을 고발했다. 평균 생존기간이 며칠에 불과했던 참호 속에서 그는 인간이 어떻게 존엄을 잃고 서서히 야수로 변해 가는지를 목격했다. 1914년 가을, 피아를 가릴 것 없이 각국 군대는 이미 진실을 깨닫고 있었다. 현대식 소총과 기관총 앞에서 군기를 들고 돌격하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집단 자살이라는 사실을. 결국 병사들은 땅속으로 숨어들었다. 독일군이 파놓은 참호를 향해 연합군도 맞은편 참호를 팠다.
그렇게 유럽 대륙을 가로질러 수천 킬로미터의 상처가 생겼다. 사람들은 그것을 전선이라 불렀지만, 실상은 거대한 무덤이었다. 그 지옥 같은 전선에서 죽어가던 프랑스군 주베르 중위는 마지막으로 일기에 단 한 줄을 남겼다.
“인간은 미쳤다.”.
그보다 더 정확한 전쟁의 정의는 없을 것이다. 전쟁은 문명의 실패다. 인류는 철학을 만들고 민주주의를 발전시켰으며 눈부신 과학기술을 이룩했다. 그러나 폭력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본능 앞에서는 번번이 무너졌다. 역사는 인류의 진보를 기록한 책인 동시에 끝없이 반복되는 전쟁의 연대기이기도 하다. 트로이의 벌판에서 시작된 피의 역사는 세계대전으로 이어졌고, 한반도와 베트남을 지나 오늘날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에까지 닿아 있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인간은 달라지지 않았다. 탐욕은 여전히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고, 증오는 정의라는 깃발 아래 행진한다. 과학은 병을 고치고 생명을 연장했지만 동시에 더 멀리, 더 정확하게, 더 많이 죽이는 방법도 발전시켰다.
전쟁은 총과 포탄의 충돌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내면에 숨어 있는 공포와 탐욕, 오만과 증오가 집단의 이름을 빌려 폭발하는 순간이다. 내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욕망, 타인을 지배하려는 야심, 나와 다른 존재를 인정하지 못하는 편협함. 전쟁은 언제나 그 어두운 감정들의 최종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문명은 생각보다 얇다. 우리가 자랑하는 질서와 도덕, 이성과 양심은 유리처럼 투명하고 아름답지만 또한 쉽게 깨진다. 열아홉 살 파울을 전쟁터로 내몰았던 선동은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반대편 어디선가 또 다른 파울이 나비를 바라보고 있을지 모른다. 집에 두고 온 가족을 생각하고, 전쟁이 끝난 뒤의 평범한 삶을 꿈꾸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다음 순간, 총탄 한 발이 그의 모든 미래를 지워버릴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인간은 여전히 전쟁을 선택한다. 그래서 더욱 두렵다. 전쟁이 무서운 것은 수많은 사람을 죽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 끔찍한 비극을 겪고도 결국 다시 같은 길로 돌아가는 인간의 망각 때문이다. 참호 속에서 죽어간 소년들은 우리에게 경고했다. 폐허가 된 도시들은 우리에게 증언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목소리를 오래 기억하지 못했다.
한반도에는 지금도 155마일의 휴전선이 누워 있다. 지도 위에서는 가느다란 선 하나에 불과하지만, 그 선은 수백만의 생사와 이별, 눈물과 기억이 응고된 상처다. 낮에는 산새가 날아넘고 들꽃이 피어나지만, 밤이 되면 서로를 겨눈 총구들이 어둠 속에서 잠들지 못한다.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다. 다만 잠시 말을 멈추고 있을 뿐이다. 언젠가 휴전선의 철조망 위에도 나비 한 마리가 내려앉을 것이다. 그 나비가 총성과 포성에 놀라 다시 날아오르는 일이 없기를. 인류가 전쟁의 비극에서 끝내 무엇인가를 배우게 되기를. 그것이 참호 속에서 죽어간 파울과, 이 땅에서 스러져간 모든 젊은 영혼들에게 우리가 갚아야 할 마지막 빚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