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연방대법원은 이민과 시민권을 둘러싼 두 개의 판단을 내렸다. 하나는 미국 땅에서 태어난 아이의 시민권을 인정하는 출생시민권 원칙을 유지한 결정이었다. 이에 따라 연간 25만5000여 이민자 자녀들이 서류미비자가 될 위험에서 벗어났다. 다른 한 결정은 아이티(35만여 명)와 시리아(6000여 명) 출신 난민들에 대한 임시보호신분(TPS)을 끝내는 것이었다. 이 퍈결로 35만6000여 이민자가 미국에서 쫓겨날 수 있다.
겉으로 보면 두 판결은 서로 다른 방향이다. 하나는 권리를 지켜낸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보호의 범위를 좁혔다. 그러나 두 결정은 결국 같은 질문을 미국 사회에 던진다. 누가 미국에 살 수 있는가?
출생시민권은 수정헌법 14조에 기반한 원칙이다. 미국 영토에서 태어난 사람은 부모의 출신 국가나 이민 신분과 관계없이 시민으로 인정받는 약속이다. 이 결정은 단지 법률 조항 하나를 유지한 것이 아니라 미국이 오랫동안 스스로 정의해 온 시민 개념의 토대를 확인한 것이다.
반면 TPS 판결은 다른 현실을 보여준다. TPS는 전쟁, 자연재해, 정치적 혼란 등으로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난민들이 미국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든 제도다. 수십 년 동안 이 제도는 단순한 행정 조치가 아니라 공동체를 지탱하는 안전망 역할을 했다. 난민들은 이 제도를 통해 일하고, 가족을 꾸리고,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렸다.
하지만 대법원은 행정부의 TPS 종료 결정에 대해 사법부가 개입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는 특정 국가 출신 이민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민주주의 안에서 권력의 균형과 책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두 판결을 함께 보면 미국 이민정책의 구조적 한계가 드러난다. 출생시민권은 태어난 순간 보장되는 권리지만 TPS와 서류미비 청년 추방 유예(DACA)와 같은 제도들은 정치 환경에 따라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임시 보호 장치다. 오랜 기간 미국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이 여전히 임시라는 이름 아래 놓여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숙제를 남긴다.
특히 한인과 아시안, 이민자 공동체는 이러한 변화가 특정 집단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한 공동체의 권리가 축소되면 다른 공동체 역시 영향을 받는다. 시민권, 체류 자격, 가족, 정치적 대표성은 서로 연결돼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개별 판결에 대한 일시적 대응을 넘어서는 논의다. 오랫동안 미국 사회를 함께 만들어 온 사람들이 더 이상 임시 지위에 의존하지 않도록 하는 구조적 해법, 그리고 인간의 존엄과 공동체의 지속성을 중심에 둔 새로운 시민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이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권리가 제한되기 시작하면 그 경계는 점점 넓어진다. 오늘은 TPS 수혜자이고 내일은 다른 공동체가 당한다. 그래서 시민권과 이민을 둘러싼 논쟁은 결국 민주주의의 범위를 결정하는 논쟁이다. 미국이 앞으로 어떤 나라가 될 것인지는 누가 배제되는지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앞날을 만들어 갈 것인가에 달려 있다.
두 판결이 남긴 과제는 분명하다. 권리를 임시로 두지 않고 사람의 삶을 제도적으로 보호하는 일이다. 민주주의는 누군가를 배제해서 강해지지 않는다. 더 많은 사람의 권리와 존엄을 인정할 때 더 튼튼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