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원의 커뮤니티광장] 한인 이야기를 담은 아시안 영화가 필요하다

최근 애틀랜타의 한 광고사에서 한국 전통 국악, 특히 장구를 칠줄 아는 사람을 찾는다는 문의메일을 받았다. 불과몇 년전만 하더라도 한국문화나 한국음악에 대한 관심이 없었는데, 요즘 이처럼 한인이나 아시안 배우를 찾는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요즘 한류 드라마, 영화의 인기가 대단하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을 시작으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기생충’까지 커다란 인기를 끌고 있고, 한국 스타들은 할리우드 스타에 버금가는 지명도를 얻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한국 영화, 드라마의 인기가 미국 할리우드 영화, 드라마에 반영되고 있을까? 구체적으로는 한국계 미국인들의 입장이 할리우드 영화, 드라마에 잘 반영되고 있을까? 최근 UCLA사회학과가 발행한 할리우드 다양성 보고서(Hollywood Diversity Report 2023)에 따르면 아직 그 대답은 ‘No’인 것 같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단 최근 11년간 할리우드 영화 출연 배우의 인종은 수치상으로 볼 때 다양해졌으며, 특히 흑인 배우들의 출연이 늘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인 등 아시안 배우들의 출연은 여전히 부족한 상태다. 2022년 극장 개봉된 미국 영화 출연진 가운데 백인이 63.9%, 흑인이 14.8%였지만, 한인 등 아시안 배우는 6.5%에 불과했다. 숫자상으로 봐도 지난해 백인 남성 출연자는 265명, 백인 여성 출연자는 166명이었지만, 아시안 남성 출연자는 19명, 아시안 여성 출연자는 25명에 불과했다.

배우가 아닌 감독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영화감독의 절대다수인 83.1%가 백인이었으며, 아시안 영화감독은 5.6%에 불과했다. 예를 들여 여성 감독의 숫자는 늘어났지만, 백인 남성 감독이 만드는 영화에 비해서는 훨씬 저예산이었다. 지난해 극장개봉된 영화 감독 가운데 백인 남성은 65명, 백인 여성은 9명에 불과했다. 아시안 영화 감독은 남성 4명, 여성 1명에 불과했다. 특히 여성 감독의 경우 여성 취향의 저예산 코미디 영화에 치중돼 있었다.

반면 이러한 영화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흑인, 아시안 등 이민자들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예를 들어 지난해 개봉된 ‘아바타’ ‘쥬라기 월드’ ‘닥터 스트레인지’의 관객의 절반 이상이 비백인이었다. 그런데 영화 출연진과 감독은 백인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안 전용 채널 AAPI Entertainment Network를 소유한 차임TV(ChimeTV) 국장인 타카시 정(Takashi Cheng)은 아시안의 입장을 대변하는 영화가 아직도 모자란다고 지적한다. 그는 몇 년전 아시안이 주연한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Crazy Rich Asians)이 대성공을 거뒀지만, 정작 아시안의 영화 진출은 여전히 모자라다고 한탄한다.

그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1990년대 중국계 이민자를 다룬 영화 ‘조이 럭 클럽’(Joy Luck Club)에 이어 20여년만의 아시아계 주연 히트작”이라며 “앞으로 아시안 영화가 나오려면 또 20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고 지적한다. 그는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영어로 된 영화로 전달(home grown cultural stories from our community in the English)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년전 한인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미나리’가 미국 양대 영화상인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적이 있다. 미국에 이민와서 미국에 살고, 미국에서 자란 한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대사 상당수가 영어가 아닌 한국어라는 이유로 ‘외국 영화’가 된 것이다. 일부에서는 할리우드의 ‘인종차별’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이처럼 한인 등 아시안 이민자들은 미국땅에서 더 이상 손님, 외국인으로 취급받아서는 안된다. 이제 한인들도 좀더 적극적으로 할리우드 영화, 드라마에 출연하고 아이디어를 내어 한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