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영어 뮤지컬 가제는 ‘사람에게서 배운 것’
모세스 극장 감독 “대본 읽고 위험 감수 판단”
한국의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은 5년 전 애틀랜타 미드타운의 얼라이언스 극장에서 첫 북미 트라이아웃(시범공연)을 했다. 이 작품이 지난 8일 열린 제78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6관왕을 달성한 경사가 전해지자, 크리스 모세스 얼라이언스 극장 예술감독(사진)은 “새로운 작품을 믿고 지지해준 애틀랜타 관객의 승리”라고 말했다.
크리스 모세스 예술감독
모세스 감독은 10일 전화 인터뷰에서 “2020년 1월 초연 뒤 곧바로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해 2021년 가을까지 1년 반 동안 극장이 폐쇄됐다”며 “당시엔 기대할 수 없던 꿈이 믿을 수 없는 방식으로 실현됐다”고 전했다. 이 작품은 극장 역사상 최다 토니상 수상작이다.
모세스 감독은 2018년 말 한 상업 프로덕션의 소개로 작품을 처음 접했다. “영어 뮤지컬로 제작해줄 미국 내 지역 극장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대본을 읽게 됐다. 한국산 로봇이 사랑에 대해 가르친다니,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독특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당시 ‘어쩌면 해피엔딩’ 공연 결정은 그 자체로 아시안 문화의 힘이 커졌음을 보여준 사례다. 공연을 맡은 8명의 배우들 중 5명이 아시안 배우였다. 캐시 앙(중국·필리핀계), 다니엘 J. 에드워즈(한국계), 다이애나 휴이(일본계), 케빈 첸(중국계), 케니 트랜(베트남계)이 참여했다. 모세스 감독은 “아시안 주연 배우가 등장하는 이야기가 매우 드물었다. 애틀랜타 역시 남부 도시의 역사적 맥락상 인종 담론이 흑백 문제에만 집중돼 온 경향이 있다”며 “우리가 고향으로 부르는 애틀랜타라는 국제적 도시의 다양성을 살펴봤을 때 관객들을 위해 충분히 위험을 감수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연출가 마이클 아덴은 “관객이 연극을 통해 자신과 전혀 다른 배경의 인물들을 접하는 게 중요했다”며 “인종, 계층, 성별, 연령, 인간과 로봇의 경계를 뛰어넘는 공감의 힘을 느끼길 바랐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영어 번안 가제를 ‘사람에게서 배운 것'(What I Learned from People)로 정한 것은 보편적 인류애를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이후 연출 과정에서 원래 제목인 ‘어쩌면 해피엔딩’으로 돌아갔다.
2018년부터 얼라이언스 극장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한인 1.5세 헬렌 김 호 변호사는 “80년대 애틀랜타에서 자라며 한국이 어디 있냐는 또래 친구들의 질문에 수시로 대답해야 했지만, 이제 한국 문화는 훌륭한 예술이 얼마나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초연 흥행을 돕기 위해 메트로 애틀랜타 아시아계 미국인 인권단체들과 협업해 관람객을 늘렸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내년 가을 볼티모어에서 시작하는 전미 투어로 애틀랜타에 금의환향할 전망이다. 모세스 감독은 “이번 토니상 석권은 애틀랜타가 새로운 뮤지컬 작품의 시작점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를 지닌다”며 “더 다양한 이야기들이 세상에 나올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으로 봤다.
장채원 기자 jang.chaewon@korea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