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의 무차별 단속으로 쑥대밭이 된 미국 조지아주 엘라벨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공장 인근에 위치한 한 게스트하우스엔 지난 4일부터 주인 없는 방 3개가 생겼다. 불법 체류자로 몰려 체포된 한국인 직원 3명이 쓰던 방이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임태환 조지아 동남부 연합한인회장은 7일 중앙일보에 “한국인 직원 8명이 투숙하고 있었는데, 단속 이후 3명이 돌아오지 못했다”며 “간신히 체포되지 않고 귀가한 이들도 본사의 ‘즉시 귀국’ 지시를 받고 대부분 귀국한 상태”라고 말했다.
근로자들의 단골 식당엔 체포를 피한 사람들이 모여 검거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검거 작전 당시 현장에 있었던 조셉 김(가명)은 “나는 영주권자이고 미국 법인에 소속돼 있었기 때문에 별문제 없이 풀려났다”며 “단기 비자로 온 한국 근로자들은 중범죄자처럼 강제로 끌려갔다”고 말했다.
그는 단속반이 시민권자와 영주권자를 먼저 열외한 뒤 비자의 종류에 따라 근로자들을 강압적으로 분류해 강제로 벽을 보고 서게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충분히 소명할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다”며 “오히려 소통이 잘 안 되면 더 강압적으로 수갑을 채우고 강제로 연행해 갔다”고 전했다. 다른 동료도 “중앙일보를 통해 푸른색 수용복을 입고 구금된 사람들의 모습을 봤다”며 “모두 전문 기술자로 왔을 텐데 남의 나라에서 감옥에 갇힌 모습을 본 한국의 가족들은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느냐”고 했다.
검거 당일 외부에 있던 이유 등으로 참사를 피한 한 하청업체 근로자는 “애초에 경제활동이 가능한 주재원 비자(L-1 또는 E-2)나 인턴용 비자로 입국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체포된 사람 중 대기업 소속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하청업체 소속인 이유는 대기업이 돈이 많이 드는 정상적 비자 발급 대상을 본사 직원으로 최소화하고 비용과 위험부담을 하청업체에 떠넘겼기 때문”이라며 “5~6차 하청업체들은 비용 때문에 B1, B2와 같은 단기 방문 비자나 ESTA(전자여행허가제)로 직원들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했다.
‘자진 출국’ 형식으로 근로자 전원을 귀국시킨다는 정부의 방침에 대해서도 “근로자 모두를 이민법을 어긴 범법자로 만들어 결국 근로자 개인이 책임을 떠안게 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이날 구금된 인원 모두에게 자진 귀국 동의서 작성을 요청했다. 그런데 현지 변호사에 따르면 자진귀국은 법 위반을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대미 투자 업무를 담당해 온 로펌 넬슨 멀린스의 앤드루 리 변호사는 “자진출국이 빠른 해결책인 것은 맞지만, 죄가 없는 사람까지 유죄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사태를 해결할 경우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인회 관계자는 “한국 공장 대부분이 자동화 설비를 갖추면서 실제 고용 효과는 미미하다”며 “이미 현지 채용이 거의 없다는 불만이 가중된 가운데 이번 사태가 ‘한국인 불법 고용’의 증거로 받아들여질 경우 여론은 더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배나=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