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월급을 받았다. 책을 좋아했던 나는 출판사에 취직을 하게 되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아침 일찍 일어나 만원버스를 타고 높은 빌딩 안으로 들어가는 기분은 최고였다. 비록 그 안에 있는 시간이 언제나 행복하진 않았어도 부대끼고 배워가는 젊은이는 꿈을 이루어 가고 있는 중이라 믿고 버티다 보니 첫 월급을 받는 날이 왔다.
첫 월급을 받으면 제일 먼저 부모님께 빨간 내의를 사 드려야 한다고 들었기에 회사 건너편에 있는 종로 5가 의류시장으로 갔다. 무엇을 골라야 할지 몰라 주인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가볍고 따뜻하게 새로 나온 제품이라며 보여주셨다. 남자는 약간 회색 빛으로, 여자는 핑크 빛 도는 게 잘 나간다고 권해 주시길래 그 중에 예쁜 것으로 골라 사 들고 나왔다. 기분이 엄청 좋았다.
내가 돈을 벌다니. 그것도 회사라는 조직에 들어가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맞춰 출근을 하고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고 직원들 과도 원만히 지내며 한달을 보냈 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제야 어른이 된 것 같다 생각하니 내 자신이 너무 대견스러웠다. 오빠, 언니들은 나보다 훨씬 잘 나가는 직장에 수입도 좋아 부모님께 근사한 선물을 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부모님은 나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으셨기에 스스로 번 돈으로 엄마, 아빠 내의를 사온 것으로도 너무 기뻐하셨고 대견해 하셨다.
돈 많이 벌어서 부모님께 효도 해야지 하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나의 생활에 필요 한 걸 충족하며 살아 가는 것이 효도하는 거라 말씀하신 그 말만 믿고 정말 나는 내가 버는 돈은 나를 위해서 모두 썼다. 고작 내의 한 벌 사드리고 생색을 냈으니 언제 철드나 싶으셨을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곰곰 생각해 보니 어느 해 엄마 생일엔 커다란 옥반지를 선물했고 연말 보너스 받은 기념으로 턴테이블이 돌아가는 전축을 사 드린 적도 있었다. 아빠가 너무 좋아하셔서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온 가족이 한참동안 신나게 놀았던 기억도 있다. 기억이 나면 웃음이 나오는 것을 보니 그런 것이 모두 행복 이였나 보다. 부모님도 자식 낳아 키우며 그런 날은 살맛 나게 행복 하셨을까? 그렇게 믿고 싶다.
큰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서너 달 동안 직장을 구하려고 애를 썼지만 생각보다 쉽게 잡히지 않았다. 조바심도 나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 초라 해지는 자신을 느껴 불안하다는 말을 하는 아들에게 나는 용기를 주고 응원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가만히 지켜만 보라 하고 알아서 해 나가도록 우리는 기다리기만 하자 했다. 부모가 능력이 있으면 좋은 자리도 소개해 주고 편하고 쉽게 일을 구하지 않았을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도 들었다. 그것은 내가 원하던 삶의 방식이 아니었는데도 막상 아들이 취직을 못하고 있다 생각하니 내가 조바심을 내고 있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큰 아들은 언제나 자신의 시간에 맞게 천천히 움직이는 아이였고 조용하지만 자신의 의지를 고집할 줄도 아는 성격이라 믿고 기다리기로 하고 응원만 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면접을 보고 오더니 드디어 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데이터분석을 공부한 녀석이 전공하고는 조금 다른 일이지만 그래도 사회에 나가 다른 친구, 형들처럼 일을 하고 싶다면서 해 보겠다 말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벌써 한달이 넘어갔다. 드디어 아들이 돈을 벌었다며 신나 한다. 알바 하면서 벌던 때와는 기분이 다르다고 했다. 아들도 내가 처음 느꼈던 어른이 된듯한 뿌듯함을 알게 된 모양이다.
“엄마, 아빠, 뭐 사드릴까요?” 싱글벙글 웃으며 묻는다. 첫 월급 타면 부모님 속옷 사 드리는 것이 우리 집안 전통이라 말해 준 것이 생각난 모양이다. 환하게 웃으며 묻은 아들이 보기 좋다. 나는 전통을 깨는 여자인가 보다. “엄마는 달리기 하기 좋은 운동화 사줘라. 나도 5K 마라톤에 도전해 보고 싶다.” 했다. 땀 흘려 일한 아들이 사준 하얀 운동화를 신고 나는 더 신나게 달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