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인생배우기 (44)
‘추석 한가위’는 한국의 명절 중에서도 으뜸가는 명절이다. 점점 길어지는 여름으로 더 이상 추석은 가을이 아니라 늦여름에 맞이하는 명절이 되었다. 곡식이나 과실이 아직 제대로 여물지 못한 시기인 것 같은데, 추석장을 보러 가면 밤, 대추, 햇과일들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어 신기했던 적이 많다. 명절에 맞춰 열매를 추수하려 노력했을 농부들의 노력이 참 대단하게 느껴졌다.
무슨 일이든 자연의 흐름에 맡기지 않고 사람이 때를 정하여 맞추려면 스트레스가 쌓인다. 피터 H 레이놀즈의 그림책 의 주인공 레오는 너무너무 바쁘다. 해도 해도 넘쳐나는 일에 도움이 될까 해서 계획표를 만들어 보지만 계획표는 점점 길어져만 간다. “나 하나로는 부족해. 내가 두 명이면 좋을 텐데.”라고 말하는 순간, 또 다른 레오가 나타난다. 새로운 레오와 일을 나눴지만 할 일은 더 많아졌고,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결국 레오는 열 명으로 늘었다. 누가 더 바쁘다 할 것도 없이 모두가 정신없이 바쁜 열 명의 레오! 진짜 레오가 하던 일을 잠시 멈추자 아홉 명의 레오가 꾸물댈 시간 없다며 소리친다. 완전히 지쳐버린 진짜 레오는 낮잠을 자려고 살짝 빠져나왔고, 잠에서 깨어나자 뭐 하고 있는 거냐며 소리치는 다른 아홉 명의 레오에게 부드럽게 웃으며 말한다. “꿈꾸고 있었어.” 레오가 “다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하면 어떨까?” 생각하자 아홉 명의 레오는 모두 사라지고 진짜 레오만 남았다. 네오는 말한다. “그냥 나 혼자서 꿈도 꾸면서 하면 되지!”라고.
바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레오처럼 일에 쫓겨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는 경험을 한번은 했을 것이다. 레오의 일 계획표에 적힌 일들을 보면, 청소하기, 자전거 고치기, 멍멍이와 산책하기, 운동하기, 도서관 가기, 예습하기…모두 몸과 머리가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일들이다. 현대 과학기술은 삶의 편의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발전해 왔다. 가사노동을 돕기 위한 세탁기, 청소기, 농업을 위한 트랙터, 콤바인, 공장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공장자동화 설비 같은 것이 그 예다. 그리고 인터넷, 인공지능 같은 첨단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의 역할과 직업, 윤리적 문제까지 변혁이 일어나고 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현대(Modern)’라고 말하기엔 어울리지 않을 만큼 이미 일과 문화, 사회 시스템에서 날마다 천지개벽 같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레오처럼 일에 쫓기다 지쳐서 찾는 꿈보다 놀다 지쳐서 찾는 일이 더 절실한 시대가 온 것 같다. 지금은 AI가 주도하는 AI 시대이다. 지금 AI는 쳇GPT, 알파고 같이 특정 작업만을 잘하는 단계를 넘어 스스로 학습하고 적응하며 성장하는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단계로 가고 있단다. 자동화 시스템과 기계에 일자리를 빼앗기고 다른 일자리를 찾아 헤매야 했던 과거의 육체노동자처럼 지금, 가장 늦게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됐던 예술 분야나 전문가 분야에서 벌써 일자리를 빼앗긴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레오에게 나타났던 다른 한 명의 레오가 AI 로봇이었다면, 레오는 계속 낮잠을 자면서 꿈을 꿀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AI의 일 처리 능력은 레오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났을 테니까. 만약 일이 없어진 레오가 꿈꾸기에 지쳐서 로봇들을 없애려고 했다면, 이미 레오에 대해 레오 자신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AI는 더 자극적이고 재밌는 꿈으로 레오를 다시 잠 재우지 않았을까?
AI 기술이 무서운 이유에 대해 AI에게 물어보았다. AI를 소수가 독점하여 기회의 불평등이 일어나고, 범죄에 악용되어 피해가 발생할 수 있고, 특정 집단에 대한 불신으로 사회구조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물음 자체가 AI 공포를 조장한다면서 AI 자체에 대한 두려움보다 잘 활용하는 법을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고 대답한다. 참 똑똑한 대답이다.
이제, 노느니 장독 깨는 사고에서 벗어나 그냥 잘 노는 법을 찾아야겠다. 노는 게 일이 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