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신문에 이민가정 학생 70%가 가족의 안전을 걱정하고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고등학생이 가족의 안전을 걱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학교가 더 이상 이민국 조사 대상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발표 이후 벌어진 일이라고 한다.
또 학교장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이민자 자녀 35.6%가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감성이 높은 연령대의 아이들이 정부와 언론에서 발표하는 내용에 따라 자신의 위치를 판단하고 갑과 을을 나누는 행동
양식을 보인다는 뜻이다. 또 다른 기사에 의하면 내년 경제 전망에 대해 중산층이 보인 반응은 2020년 코로나 시기보다 2배나 나쁠 것이라 예측했다고 한다.
개인의 불안한 마음은 사회적으로는 소비 활동과 이동을 위축시키게 된다. 그 결과 인간의 기본 욕구를 억제하는 효과를 불러오고 불만이 담긴 생각과 행동으로 전이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나누어 설명했다. 생리적 욕구와 안전에 대한 욕구, 사회적 욕구, 존경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가 그것이다. 필자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부분은 인간으로서 가장 낮은 수준에서 요구되는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먹고 마시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상태나 상황을 향한 욕구, 이는 주로 후진국에서 국민들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면서 국민 개인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단계를 말한다. 또 가정에선 나와 내 가족이 굶지 않고, 위험에 노출되지 않는 사회에서 살게 하고 싶다는 수준을 말한다.
만약 이 수준이 달성되었다면 그 다음은 사회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즉 대다수 국민이 어느 수준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살아가느냐가 한 국가의 전반적인 수준을 나타낸다는 뜻이다. 그래서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것이고, 어느 나라가 더 행복한지를 보여주는 국가행복지수도 발표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풍조는 이런 면에서 면밀히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법이나 사회적 기준이 없었다가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진 것이라면 받아들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고 불안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기존의 법과 정책적 질서 하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을 불안한 상태로 빠뜨리면서 경제적 침체와 사회적 불안이 우리사회를 엄습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정치란 원래 법을 지키는 살아가는 사람, 세금을 내는 국민에게 안정감을 제공하고 나와 가족이 원초적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믿음을 제공하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최근의 국내외 정치를 보면 안정보다 사회적 불안감을 통해 국민과 시민의 불안을 조성하는 쪽으로 나가고 있는 것 같다.
비단 미국 뿐아니라 먹고 사는 문제와 사회적 활동에서 중요한 SNS를 통제하려 했던 방글라데시, 네팔, 스리랑카의 기 성정치도 무너졌다. 20~30대 젊은이들은 국가를 막론하고 먹고사는 문제, 미래에 대한 불안을 만드는 정부를 용서하지 않았던 것이다.
비자와 영주권으로 세금을 내는 사람이나 시민권을 취득한 사람에게까지 먹고사는 문제와 안전하게 살아가는 문제로 위협하는 것은 기존의 정책과 법률에 맞추어 살아 온 사람들에게는 공정하지 않은 변화이다. 국가가 가진 고유의 의무인 편안하고 안전하게 먹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시민권을 취득하고 영주권을 받으려 하는 사람들의 믿음을 저버리는 것은 사회경제적 위축이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사회적 불안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불안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국민 모두에게 안전하게 살 수 있다는 믿음, 먹고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정치가 피어나는 세상,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웃고 즐기며 자유롭게 이동하고 소비하고 생산하는 사회가 되기를 기원하며 또한. 우리의 청소년에게 우위와 불안에 물들지 않고 건강한 의식을 심어주는 믿음으로 가득한 세상이 다시 되어 주기를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