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3주 동안 혼자 한국에 갔다. 장모님 연세가 많아 언제 다시 뵐 수 있을지 몰라 다녀오겠다고 했다. 긴 비행 시간과 시차가 힘들어 나는 더 이상 한국에 가지 않기로 했기에, 아내 혼자 떠났다. 아내 없이 혼자 집에 있으니 물론 불편 하지만 몇 가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혼자 있으니 무엇보다 식사는 불편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자주 들었다. 식사는 평소에도 내가 내 먹을 것을 준비하는 편이어서 크게 불편하지 않다. 그런데 막상 지내보니 다른 불편한 점들이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아들이 내 침실에 들어와 자고 있는 나를 깨웠다. 시계를 보니 6시 반이 지나 있었다. 아내가 있을 때는 한 번도 늦은 적이 없이 늘 5시 반이면 일어났다. 아들이 깨워서 내가 일어날 때 아들이 “Scared…”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아들의 입장에서 보면, 매일 일찍 출근하는 그 보다 항상 더 일찍 일어나 스트레칭도 하고 아침 식사도 챙기는 아버지가 엄마가 없는 사이 안 일어나니, 혹시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놀란 것 같았다. 그 후에도 몇 번 더 늦게 일어나는 날이 있었다.
아내가 없는 사이 집안 대청소를 했다. 창문마다 블라인드가 있는데, 오랫동안 한 번도 쌓인 먼지를 닦지 못했다. 어떻게 청소할까 궁리하다가 큰 진공청소기에 털 달린 작은 노즐을 끼우고 블라인드를 눕혀서 빨아들였더니 먼지가 제거되었다. 창문마다 쌓여 있던 십 년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나니 마음까지 시원했다.
대청소를 하다 보니 방 구석마다 빈 공간 마다 쓰지도 않는 아내의 물건들이 쌓여 있다. 안 쓰는 내 물건도 좀 정리하고, 아내 물건도 함께 정리해볼까 하고 오래된 물건을 집어 들다가, 문득 아내의 말이 떠올랐다. “내 물건에 손대지 마!” 나는 들고 있던 물건을 다시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아내와 거의 60년 가까이 결혼 생활을 했다. 은퇴 전 일할 때는 늘 바쁘게 살아 서로 말다툼을 할 시간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은퇴하고 집에서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둘 다 늙어 가면서 의견 충돌과 말싸움이 잦아진 것 같다. 어렵고 바쁠 때는 서로 협조하며 잘 지냈는데 이제는 여유롭고 근심 걱정 없이 살아야 할 때에 와서 티격태격하다니, 어차피 우리 둘이 같이 살아가야 하고, 우리에게 남은 길지 않은 시간을 싸우지 않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
장남과 장녀가 만나 결혼한 부부는 갈등이 많을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장남과 장녀는 어려 서부터 동생들을 보호하고 책임지며 살아왔기에, 자신도 모르게 통제하고 이끌려는 성격이 형성된다고 한다. 그런 성격을 가진 두 사람이 결혼 생활을 하면 서로 부딪칠 일이 많다는 것이다. 나는 장남이고, 아내는 장녀다. 그래서 우린 티격태격하는 걸까?
아내는 초등학교 저학년 담임 교사를 했다. 어린아이들을 통제하고 규율을 세우며 가르치는 일을 했다. 나 역시 평생 선생으로 살았다. 초등학생이든 대학생이든, 반 안에서 규율을 지키고 학습환경을 만들어 가려 신경 쓰며 살아왔다. 그런 아내와 그런 남편이 만났으니, 서로 상대를 통제하려는 행동이 말싸움의 원인인지 모른다.
나도 늙어가면서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변한다. 그 변화가 새로운 적응에 어려움을 준다. 어쩌면 여자인 아내에겐 늙어가면서 더 복잡하고 어려운 변화들이 불만과 신음으로 표현될 때, 나는 이해를 못하고 공감하는 대신 지적하고 말 싸움을 했는지 모른다. 더 일찍 늙어가는 내가 노환에서 오는 고통과 신음에 아내가 어려움을 겪는지 모른다.
늙은 개에게 새로운 재주를 가르칠 수 없듯이, 늙은 사람 성격을 고치기 어렵다. 늙은 아내의 성격이나 내 성격을 잔소리해서 고치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우린 섣불리 상대의 나쁜 버릇 고치려 잔소리해서 말싸움을 자주 한 것은 아닐까? 남은 여생을 함께 살 동반자인 우리가 덜 싸우고 더 화목하게 지내려면 서로의 나쁜 버릇을 지적하고 고치려고 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티격태격 은 오래 같이 살아가는 부부들의 사는 방식이니, 그냥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분들이 많다.
있는 그대로 이해하며 받아들이는 것이 성숙한 방법 같다. 있는 그대로도 얼마나 감사한가? 60년 가까이 부부로 여기까지 살아온 것, 아직도 살아 있고 건강한 것, 이 얼마나 큰 축복이며 감사한 일인가! 때로는 노년의 병환과 우울증에서 오는 신음소리들을 비판하기보다 이해하고, 지적하기보다 공감하고, 같이 도우며 감사하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나도 늙어 내 버릇 고치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감사하며 노력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