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들판에서 강아지 꼬리 같은 이삭들이 바람에 출렁이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풀밭 옆길을 차로 지나갈 때마다 나도 모르게 강아지 풀밭에 눈길이 간다. 봄이 된 이 시간, 그 자리에는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랐다. 무성한 잡초들 사이에 강아지풀 새싹도 있을 것이다. 가을이 다시 오면 그 새싹들은 또다시 강아지 꼬리 같은 이삭들을 흔들며 수많은 씨앗들을 땅 위에 흩뿌릴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은 돌고 돌며 반복되는데, 강아지풀은 그 질서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씨를 남기고 사라진다.
나도 이제 늙어가며 주위의 친구들이 병들고 하나둘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보면 문득 내가 인생의 겨울 언덕에 와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나 역시 누군가의 자녀로 태어나 자라고, 배우고, 일하고, 사랑하고, 자녀를 키우며 인생의 봄과 여름과 가을을 지나 이제 겨울의 문턱 앞에 서 있다.
문득 시편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가면 없어지나니 그 있던 자리도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알고 보면, 땅에 떨어진 작은 풀씨 하나가 살아나는 과정조차 신비롭다. 봄이 되어 햇빛이 따뜻하고 땅에 물기가 스며들면 씨앗은 물을 빨아들여 부풀어 오른다. 그리고 씨앗 속에 저장되어 있던 영양분이 분해되어 뿌리가 되어 아래로 뻗어 물을 빨아들이고, 이어 새싹이 위로 솟아 햇빛을 향해 자란다.
새싹은 햇빛 아래에서 광합성이라는 놀라운 화학 작용을 시작한다. 뿌리로 빨아들인 물(H₂O)과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CO₂)를 햇빛의 에너지로 결합하여 포도당(C₆H₁₂O₆)을 만들고 산소를 분리해 낸다. 그 복잡한 화학 작용을 강아지풀 씨앗이 무슨 지혜로 해내는 것일까? 누가 그 작은 씨앗 속에 그런 생명의 질서를 심어 놓았을까? 풀은 그렇게 스스로 영양분을 만들며 자라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씨앗을 남긴 뒤 사라진다.
그리고 강아지풀이나 열매 속의 영양분을 토끼나 짐승들이 먹어 에너지를 얻는다. 그 과정은 광합성과는 반대이다. 동물은 포도당을 분해하여 물과 이산화탄소를 만들고, 그 분해 과정에서 나오는 에너지로 살아간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구 위의 생명들은 서로 얽히고 도우며 살아가는 거대한 먹이사슬의 그물망 속에 존재한다. 나 역시 그 신비한 생명의 그물망 속 작은 한 점이다.
나도 하나의 정자와 하나의 난자가 만나 이루어진 수정란, 단 하나의 세포에서 시작되었다. 그 작은 세포 하나가 스스로 복제되며 심장을 만들고, 신경세포를 만들고, 뼈와 피와 살을 만들며 마침내 “나”라는 존재가 되었다. 내 뇌에는 수백억 개의 신경세포가 있고, 그 신경세포들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내 폐에는 3~5억 개의 공기주머니가 있어 숨을 쉴 때마다 산소를 받아들이고 이산화탄소를 내보낸다. 내 혈관을 모두 한 줄로 이으면 지구를 몇 바퀴나 돌 수 있다고 한다.
눈과 귀와 심장과 폐와 소화기관, 그 어느 하나도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다. 나는 숨 쉬는 원리조차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다. 그리고 마치 내가 내 삶을 완전히 통제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착각했다. 내 삶을 돌아보니 나 역시 “살아온 존재”이기 전에 “살려져 온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생명의 기적과 험한 환경 속에서도 자연의 질서와 은혜 속에 살려져 올 가치가 있는 값진 존재, 그것이 나다. 그런 값진 존재인 나를 내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가? 내 주위의 한 분 한 분 모두 나와 같이 자연의 큰 섭리 혹은 신의 은혜로 여기까지 살려져 온 값진 존재들이 아닌가!
있는 이대로의 나를, 그리고 있었던 그대로의 나를 내가 받아들이는 것이 나의 행복의 출발점이라고 많은 연구들이 말한다.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처가 많은 나는 나의 상처들을 깊이 묻어 두지 말고 찾아가 부끄러워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이해하면, 상처들이 나의 연단의 증거들이 되지 않을까.
많은 연습을 한 숙련공이 맡은 일을 더 잘하듯, 많은 연단은 나로 하여금 고달팠던 나의 인생 과업을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내가 나의 아픔과 부끄러움을 찾아가 그렇게 해석하려 한다면, 나의 부끄러움과 아픔이 변하여 감사로 바뀌지 않을까. 어차피 나는 큰 질서와 은혜 속에서 길러진 존재이니까, 내게 생긴 모든 일이 다 합하여 선을 이루어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이니까, 확실하지 않을까.
있었던 그대로의 나와 지금 있는 이대로의 나를 더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거짓과 허풍을 걷어내고 진실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