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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흡의 살며 생각하며] 신을 빌린 권력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김건흡 / MDC사랑복지센터 회원

04/01/26
in 애틀랜타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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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7년 1월 눈발이 휘날리는 이탈리아 북부 산지 카노사성 앞에 한 젊은이가 사흘째 맨발로 서 있었다. 옷차림은 수도자처럼 얇고 검소했고 신발조차 신지 않았다. 신성로마제국으로 불리던 독일의 황제 하인리히 4세였다. 그는 자신의 주교 임명권을 지키려고 교황에게 대항하며 결기를 보이던 젊은 권력자였다. 하지만 교황에게 파문당해 황제의 자리와 생명까지 위협을 받게 되자 결국 교황의 용서를 구하려고 치욕을 무릅쓰고 추위 속에 떨며 서 있었다. 중세 유럽에서 가톨릭 교회는 단순한 종교 기관이 아니었다. 교황은 왕을 파문할 수 있었고, 그 결정 하나로 국가의 질서가 흔들렸다. 권력은 신의 이름을 빌렸고, 신은 권력의 언어로 해석되었다.

이러한 구조는 현대에도 형태를 바꿔 살아남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1979년 이란 회교혁명 이후 등장한 이란의 정치 체제다. 혁명은 부패한 왕정에 맞선 민중의 분노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그 결과 탄생한 국가는 단순한 공화국이 아니었다. 종교 지도자가 국가의 최고 권위를 갖는 독특한 체제, 즉 ‘신정 정치’였다. 이 체제의 핵심에는 루홀라 호메이니가 제시한 ‘벨라야테 파키(이슬람 법학자의 통치)’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종교 법학자가 신의 뜻을 가장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으며, 따라서 국가를 통치할 정당성을 가진다는 논리다. 이로써 정치 권력은 단순한 행정 권한을 넘어 신의 의지를 대리하는 위치에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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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과 오늘날 이란 신정체제의 공통점은 종교가 권력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정치 권력이 신의 이름으로 행사된다는 데 있다. 교리 해석권을 쥔 소수가 사회 전반을 통제하며, 반대는 곧 신성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된다는 점에서도 닮아 있다. 현재 이란의 최고지도자는 선거로 뽑히지 않지만 군사·사법·정치 전반에 걸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대통령과 의회가 존재하지만, 그 위에 종교적 권위가 놓여 있는 이중 구조다. 여기서 법은 단순한 사회 규범이 아니라 신의 율법으로 해석된다. 이란 정권의 특수성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권력이 단순히 강압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신앙과 결합해 인간의 내면까지 파고든다는 데 있다. 사람들은 법을 따르는 동시에 신의 뜻을 따른다고 믿는다. 그 결과 권력은 외부의 억압이 아니라 내면의 신념으로 작동하며, 훨씬 더 견고한 형태를 띤다. 이란이 막강한 미국의 군사력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이유다.

종교와 권력이 손을 맞잡을 때, 그것은 단순한 결합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과 사회 구조를 동시에 지배하려는 강력한 장치가 된다. 신의 이름은 본래 인간의 한계를 자각하고 겸허함을 배우게 하는 데 있었으나 권력이 이를 빌리는 순간 그 성격은 근본적으로 변질된다. 신성은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권위로 탈바꿈하고, 권력은 그 권위를 방패 삼아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이란의 신정체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혁명은 부패한 왕정을 무너뜨리고 정의로운 질서를 세우겠다는 열망에서 비롯되었지만, 그 결과로 탄생한 체제는 종교적 정당성을 정치 권력의 핵심 축으로 삼았다. 신의 뜻을 해석하는 소수의 성직자 집단이 국가 운영의 정점에 서게 되었고, 그 순간부터 권력에 대한 견제는 곧 신성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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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구조는 필연적으로 긴장을 낳는다. 인간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요구는 시대가 흐를수록 커진다. 그러나 신정체제는 변화를 더디게 받아들이거나 아예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신의 법은 변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 간극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크게 벌어진다. 오늘날 이란이 처한 상황은 바로 이 구조적 모순이 외부 압력과 맞물리며 표면 위로 드러난 모습이다. 경제 제재와 군사적 긴장은 체제의 결속을 강화하는 명분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부 불만을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젊은 세대는 더 넓은 세계를 알고 있으며, 삶의 방식과 가치에 있어 기존 질서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억압으로 이를 잠재울 수는 있어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역사를 돌아보면, 신성과 권력이 결합된 체제는 두 갈래의 길 중 하나를 택해왔다. 스스로를 유연하게 변화시켜 시대와 타협하거나, 끝까지 경직된 채 외부와 내부의 압력 속에서 급격한 균열을 맞이하는 것이다. 중세의 사례들에서 보듯 신의 권위를 등에 업은 권력이라 할지라도 인간 사회의 변화라는 거대한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이란 신정체제의 앞날 역시 이 두 경로 사이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하나는 점진적 변화의 길이다. 종교적 정체성을 유지하되 정치 구조를 보다 유연하게 조정하고, 시민의 참여와 자유를 일정 부분 확대하는 방향이다. 이는 체제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현실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기존 권력 핵심부의 기득권을 흔들기 때문에 내부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경직된 유지다. 외부의 위협을 강조하며 내부 결속을 다지고, 기존의 통제 방식을 강화하는 길이다. 단기적으로는 체제를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불만과 경제적 어려움이 누적되며 더 큰 충돌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변화는 점진적 개혁이 아니라 급격한 전환, 혹은 체제 위기로 나타날 수 있다. 결국 관건은 ‘신의 이름으로 행사되는 권력’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실제로 개선하고 설득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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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해협이 세계 경제의 목줄을 잡고 있다. 하지만 파도는 길을 막을 수 있어도, 바람의 방향까지 가두지는 못한다. 신을 등에 업은 권력은 버티지만 결국 무너뜨리는 것은 인간의 시간이다. 신의 이름으로 버티는 자, 결국 인간의 한계 앞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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