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노인대학의 작은 그룹 토론 시간에 “늙어가며 조심해야 할 정신적인 문제”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참가한 둥근 테이블에 둘러앉은 남자 노인들이 지적한 문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너무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옛날 방식으로 적응하는 문제. 둘째는, 주위 사람들이 떠나고 혼자 살아가는 외로움. 셋째는, 늙어갈수록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처럼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인공지능의 시대는 오늘과 내일이 다르게 변한다. 내가 손녀에게 핸드폰이나 컴퓨터 문제를 도와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하니, 모두들 자신들도 그런다고 공감한다. 손녀가 어렸을 때는 내가 글 읽는 법을 가르쳐 주고 함께 책을 만들며 읽어 주었다. 이제는 내가 손녀에게 웃으며 말한다. “이제는 네가 할아버지의 선생님이 되었구나.”
변하는 세상에 뒤지지 않으려고 나는 교회 노인대학에 나가 핸드폰 사용법도 배우고, 인공지능에 대해서도 배우려 한다. 양배추김치와 양파김치를 어떻게 담그는 지 챗지피티에게 한국말로 물으니 마치 경험 많은 음식점 할머니처럼 자상하게 설명해 준다. 때로는 지혜롭고 박식한 개인 비서를 곁에 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젊은 시절의 나는 내 전문 분야 좁은 우물만 파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은퇴 후 여러 사람을 만나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며 깨달었다.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고, 내가 안다는 것은 넓은 모래사장에서 겨우 모래 한 알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넓고, 사람들의 지혜와 삶은 끝없이 다양하다. 그래서 세상은 더 좋아 진다.
오래된 친구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이야. 그동안 잘 지냈지?” “누구야?” “나야. 김 ○○.” “…누군지 생각이 안 나.” “같은 교회 다니며 친하고 두 집 부부가 식사도 여러 번 같이 한 친구잖아?” “기억이 안 나.”
전화를 끊고 난 뒤, 치매가 왔다는 친구의 소식을 확인하며 한동안 마음이 먹먹했다. 치매에 걸리고 싶어 걸리는 사람이 있을까? 죽은 동창과 친구들이 살아 있는 친구들보다 더 많다. 아내와 사별한 뒤 혼자 사는 남자분들도, 여자분들도 주변에 여럿이다.
우리 부부는 월요일과 금요일 아침마다 등산 모임에 나간다. 걷기를 마친 뒤에는 맥도날드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교회에도 꾸준히 나가고, 시니어 대학에서 노래도 부르고 새로운 것도 배우며 사람들을 만난다. 눈 문제 때문에 좋아하던 운동을 한동안 그만두었지만, 최근에는 다시 탁구를 시작했다. 늙어가며 외롭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젊어서는 경쟁 사회속에 생존하려 열심히 일해야 했고, 가족의 생계를 맡았던 한국 남자들이 늙어 가면서 자신의 구실이 없어지며 쓸데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드는 게 문제라고 한다. 한국 노인의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통계도 있다. 문득 “나도 이제는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일까?” 그런 의문이 생긴다.
얼마 전, 컴퓨터에 스캔해 두었던 우리 부부의 흑백 결혼사진을 챗지피티에게 천연색을 입혀 달라고 했다. 천연색으로 되살아난 옛 사진 속에는 20대에 결혼하는 우리 부부가 가운데 서있고, 그 주위에 양가의 친척들이 둘러서 있다. 60년이 흐른 지금, 어머니도, 삼촌 부부도, 고모 부부도, 먼 친척들도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오직 아흔일곱의 장모님 만이 살아 계신다.
그 사진을 바라보니 인생의 사계절이 보인다. 들풀들이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을 지나며 살아가듯, 우리도 인생의 사계절 속에서 자연의 질서와 생명의 은혜 속에 살려지고 사라진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 이 순간 숨 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감사해진다. 가족이 있는 것이 감사하고, 좋은 이웃과 친구가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늙어간다는 것은 어쩌면 다시 어린아이처럼 되어가는 자연의 순서인지도 모른다. 자연의 섭리속에 내가 살려지는 과정, 슬퍼할 이유가 있을까? 어렵고 고단했던 삶의 시간들이 나를 연단하여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게 한 과정을 돌아보니 어릴 때의 가난과 고생도 감사해야 할 것으로 변한다.
구차하게 살아온 내가 큰 계획 속에서 살려진 귀한 존재라면, 내 이웃 또한 살려진 귀한 존재들이다. 다 다르지만 인생의 계절을 따라 살려진 소중한 분들,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다양하기에 더 좋은 세상을 같이 만들어 가는 분들, 내가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노력해야 한다.
내게 허락된 남은 시간을 불평 속에서 보내기보다 감사하며 살고 싶다. 남은 시간을 슬픔 속에 머무르기보다 기쁨을 바라보고 싶다. 남을 비판하고 판단하던 버릇을 고쳐, 다양함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감사하며 살고 싶다. 다만 마지막 길이 너무 긴 병과 고통의 길이 아니기를,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지나친 짐이 되지 않기를 조용히 기도할 뿐이다.



